두산그룹이 올해 1조 원을 우선 마련하겠다는 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시장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채권단과 약속한 남은 2조 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주목한다.
남은 매물들의 매각에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가장 빨리 매각될 수 있고 가장 비쌀 것으로 예상되는 잠재적 매물을 주시하고 있다. 바로 두산밥캣이다.
◆ 두산밥캣은 자금 마련 가장 빠르고 확실한 매물
9일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 채권단과 협의한 자구안에 2021년 상반기까지 두산밥캣의 매각을 위한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안을 넣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두산그룹과 채권단은 이와 관련해 매각대상이 되는 자산이나 계열사를 확인해줄 수는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장은
박정원 회장이 두산밥캣을 반드시 매각하겠다고 채권단에 약속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약 매각하게 된다면 그 시기를 특정했을 수는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두산밥캣은 박 회장이 채권단과 최종적으로 약속한 3조 원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잠재적 매물이기 때문이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단은 두산그룹에서 3조 원 이상을 회수해야 하는 만큼 수십 가지 계획을 세워뒀을 것”이라며 “두산그룹이 무엇을 더 아끼고 최대한 매각을 늦추는지의 순번은 있을 것이나 두산밥캣도 매각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두산밥캣의 특별관계자 보유지분 51.06%는 현재 두산밥캣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1조3천억 원어치 수준에 이른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하면 1조7천억 원 수준까지 가격이 뛸 것으로 예상되며 협상 과정에서 인수 희망자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진다면 더 비싸질 수도 있다.
두산밥캣을 잘 매각할 수만 있다면 박 회장은 단숨에 2조 원에 가까운 큰 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두산밥캣은 2019년 두산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24.2%를 혼자 거둔 그룹의 현금 창출원이다. 때문에 박 회장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어 할 계열사이기도 하다.
박 회장이 두산밥캣을 지키고 다른 대형 매물들의 매각에 집중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3조 원 마련의 길은 상당히 험난해질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에서 매각 가능성이 거론되는 계열사들은 두산메카텍, 지주사격 두산의 모트롤BG(유압기기사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정도다. 이 가운데 장부가액 2382억 원의 두산메카텍을 제외한 나머지 매물들은 모두 크고 작은 걸림돌이 있다.
◆ 두산 모트롤BG는 매각 방식부터 결정해야
두산 모트롤BG는 국내 유압기기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라 있으며 해마다 매출 5천억 원 안팎을 내는 우량매물이다. 다만 계열사가 아닌 사업부문이라 매각에 앞서 매각방식부터 결정해야 한다
두산이 모트롤BG를 물적분할한 뒤 인수 희망자와 주식 양수도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게 나온다.
이렇게 되면 두산의 특별관계자 지분율이 47.24%에 이르는 만큼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승인을 받기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사업부문의 분할은 채권자 보호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만약 사업분할을 반대하는 채권자가 있다면 두산은 이들과 채무관계를 먼저 해소한 뒤 분할을 진행해야 한다.
두산이 물적분할이 아닌 사업양수도 방식으로 모트롤BG의 매각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때는 매각을 반대하는 두산 주주들이 주식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부담이 따른다.
두산그룹은 두산 모트롤BG의 매각을 위한 본입찰을 13일 진행한다. 어떤 매각 방식이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입찰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실제 매각이 성사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건설은 매각 무산될 가능성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밥캣 못지 않은 그룹의 현금 창출원이다. 2019년에는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31.5%를 내며 두산밥캣보다도 뛰어난 현금 창출력을 보였다.
그러나 두산인프라코어 중국 법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상장 문제를 놓고 사모펀드들과 벌이는 8천억 원대의 소송이 매각에서 최대 걸림돌이다.
지난 2011년 IMMPE(프라이빗에쿼티), 하나금융투자PE, 미래에셋자산운용PE는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의 재무적투자자로 참여해 지분 20%를 인수했다. 여기에는 3년 안에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 기업공개를 통해 투자금을 돌려준다는 약속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사모펀드들과 합의했던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 3년 내 기업공개에 실패했고 2015년 공개 매각마저 실패했다. 이에 사모펀드들은 두산그룹이 계약 이행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두산그룹이 승소했으나 2심에서는 사모펀드들이 이겼다. 대법원의 결정만이 남아 있으며 판결은 2021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상고심에서 두산그룹이 패소한다면 두산인프라코어는 배상금 리스크가 현실화해 매물로서 매력이 크게 훼손된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올해 1분기 말 별도기준으로 241.6%의 높은 부채비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배상의무가 얹어질 때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증권업계에서는 두산그룹이 승소해 박 회장이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되더라도 두산인프라코어의 가치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을 분리하기 위해 두산인프라코어를 사업부문과 투자부문으로 나누는 인적분할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매물이 되는 두산인프라코어 사업부문에는 두산밥캣의 지분가치가 더 이상 반영되지 않는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두산인프라코어의 특별관계자 보유지분인 36.31%의 가치는 5천억 원 수준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현재 시가총액이 저평가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박 회장이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 시장이 냉정하게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두산인프라코어의 별도기준 차입금 2조9천억 원은 올해 별도 영업이익 전망치인 2442억 원과 비교해 너무 많다”며 “두산밥캣이 분리된 두산인프라코어는 현금 창출력이 약화해 매물로서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두산건설은 이미 매물화 작업이 끝나 있다. 앞서 6월 물적분할을 통해 부실자산을 모두 신설법인 밸류그로스에 넘기고 매각대상만을 존속법인에 남겼다.
두산그룹은 두산건설 매각을 위한 본입찰을 7월 안에 진행할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두산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두산위브’를 제외하고는 경쟁력이 크지 않다고 여겨지며 건설업황이 침체된 상황에서 적절한 가격을 써내는 인수 희망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 박정원 , 올해 1조 확보는 순조로워
박정원 회장은 채권단과 약속한 3조 원 가운데 1조 원을 올해 안에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8일 두산그룹 지주사 격인 두산은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와 두산솔루스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다고 공시했다. 협상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투자업계는 두산솔루스 특별관계자 보유지분인 61.34%를 7천억 원에 넘기는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앞서 6월에는 두산중공업이 골프장 클럽모우CC의 매각을 위해 하나금융-모아미래도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컨소시엄은 클럽모우CC를 사들이기 위해 입찰에서 1800억 원의 가격을 써냈다.
두산그룹은 두산타워의 매각을 위해 마스턴투자운용과 협상의 막바지 단계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타워의 가치는 6천억~8천억 원 수준으로 거론되며 입점 점포의 보증금이나 담보대출금을 상환한 뒤 실제 두산그룹이 쥐게 될 현금은 4천억 원 안팎으로 전망된다.
이 매물의 매각만 완료되면 박 회장은 올해 1조 원을 준비한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2조 원과 관련해 채권단은 두산그룹에 계열사 매각을 재촉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빠른 자금 회수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은 숨기지 않고 있다.
앞서 6월 최대현 KDB산업은행 부행장은 온라인 현안설명회를 통해 “두산그룹의 자산매각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율적으로 진행하도록 할 것”이라면서도 “자산 매각이 계획대로 된다면 채권단의 긴급자금과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두산중공업 경영도 조기에 정상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매물의 제 값을 받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을 들이면 채권단도 무작정 기다려 줄 수만은 없다. 채권단이 말하는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가 지원자금의 회수를 뜻한다면 시간이 언제까지고 박 회장의 편일 수는 없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