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17일 열린 산업은행 현안 관련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마무리하기 위해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에게 ‘구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일까?
이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에게 재차 만나자고 요구한 것을 놓고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더 다급해진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회장이 17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을 하루빨리 매각하고 싶은 이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달래고 있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이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차례 ‘신뢰’를 강조했다. 아직까지 HDC현대산업개발을 신뢰하고 있으며 우리를 믿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해달라고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9일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열흘 가까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이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보다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지난해 칼자루를 쥐고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진두지휘했던 만큼 매각 무산만큼은 피하고 싶을 것으로 보인다. 매각이 무산되면 가장 먼저 이 회장에게 책임의 화살이 향할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의 임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점 역시 이 회장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임기는 9월 초 끝난다. 시작한 일인 만큼 최대한 임기 안에 매각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이 회장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서로에게 수정된 조건을 먼저 내놓기를 바라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인수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얽혀 있는 데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번 거래에 많은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선뜻 먼저 계약조건을 어떻게 바꾸자는 제안을 내놓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침묵하고 있는 건 산업은행 쪽에 ‘어디까지 양보해 줄 수 있는지 먼저 제시하라’는 메시지로 보인다”며 “이 회장 역시 ‘먼저 원하는 조건을 얘기하면 검토해 보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시장상황과 환경이 바뀌어도 서로 협의하고 믿으면 많은 것을 조정할 수 있다”며 어느 정도 양보할 의사도 내비쳤다.
다만 무작정 끌려다니지는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보였다.
이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무슨 60년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서 하면 된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HDC현대산업개발도 다 알고 있는데 언제든지 찾아오면 된다” 등 다소 감정섞인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거래와 관련한 HDC현대산업개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내놓은 점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증가, 삼일회계법인의 부적정 의견 표명, 동의없는 차입 승인, 불성실한 자료 제공 등으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면에서 재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산업은행은 이를 항목별로 짚으며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산업은행이 ‘팩트’를 들고 나오면서 HDC현대산업개발도 어떻게든 반박을 위해 침묵을 깨고 등장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각에서 이 회장이 매각 무산을 염두에 뒀다는 관측도 나온다. 양쪽 모두 재논의가 필요하며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히긴 했지만 사실상 매각 무산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HDC현대산업개발과 산업은행이 보도자료를 주고받고 산업은행은 기자간담회까지 연 점을 놓고 거래 무산을 염두에 두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명분을 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 아니어도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할 수 있으니 아쉬울 게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을 압박했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다만 산업은행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거래를 놓고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고 해도 의견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주 가격이나 신주 가격, 출자 전환 등 HDC현대산업개발, 산업은행뿐만 아니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미래, 국내 항공산업의 재편, 나아가 국민 세금까지 얽히고설킨 문제인 탓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