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도 승부수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승부수를 띄울까?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반 년이 지났지만 파는 쪽과 사는 쪽 모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머물고 있다.
업계의 전망은 매각 무산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동안 HDC현대산업개발은 인수 포기설이 불거질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사실무근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아예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포기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후속절차인 구주 취득일자를 무기한 연기했다.
표면적으로는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결국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 경영난이 심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의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무려 6297.8%다.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가장 높다. 그렇지 않아도 재무구조가 부실했는데 올해 코로나19의 직격탄까지 맞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2분기 자본잠식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102.1%로 재무구조가 튼튼하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밀어붙이면 자칫 배임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래에셋대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점도 인수 무산에 무게를 더한다.
정몽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하기까지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의지와 자본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뒤 “무리하면 HDC그룹 혼자서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겠지만 여러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끈
박현주 회장의 안목이나 인사이트를 얻고 싶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그동안 관광산업에 투자를 늘려왔는데 코로나19 여파로 해외부동산과 호텔 등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최근 7조 원 규모의 미국 호텔 인수와 관련해 매도자인 중국 안방보험과 법적 다툼에 들어갔다.
미국 호텔 인수가 어그러지면 아시아나항공을 함께 인수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박 회장과 정 회장의 큰 그림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매각 무산 가능성이 떠오르면서 아시아나항공 내부의 불안감도 감지된다.
일부 임직원들은 이미 매각 무산을 각오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에 오래 몸담은 한 고위 임원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포기하면 아시아나항공이 산업은행 관리로 넘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임원들은 다 옷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싸고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회장의 셈법도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
이동걸 회장으로선 매각 무산만큼은 피하고 싶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끌려다닐 수도 없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산업은행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자금 지원을 놓고 지켜보는 눈초리도 날카로워진 상황에서 특혜시비가 일어날 수 있는 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것이라면 SK그룹이나 한화그룹 등 대기업 가운데 같은 조건으로 인수할 만한 곳을 찾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특혜를 주면서까지 아시아나항공을 굳이 HDC현대산업개발에 넘겨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각이 무산되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대주주의 감자 과정을 거쳐 채권단이 최대주주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 산업은행이 다른 원매자를 빨리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오랫동안 떠안게 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현재 항공업계를 둘러싼 상황 등을 볼 때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원매자를 금방 찾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몽규 회장 역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면 잃을 게 많다. 2500억 원가량의 계약금을 날리게 되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관계 악화를 각오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포기도 승부수’라는 말이 이미 나오고 있다. 과거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했을 때처럼 정 회장 역시 결단을 내리지 않겠냐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