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0-04-13 15: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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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가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자동차시장에서 형제기업인 현대자동차를 앞서고 있다.
기아차의 성과는 현지 전략형 차종의 인기에 기반하고 있는데 코로나19 국면이 끝나도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송호성 기아자동차 담당 사장.
13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기아차가 3월 미국과 유럽 판매량에서 현대차(제네시스 포함)를 추월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아차가 3월에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은 모두 4만5413대다. 2019년 3월보다 판매량이 18.6%나 감소했지만 경쟁기업들과 비교하면 선방했다.
특히 현대차를 앞섰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현대차는 3월에 미국에서 모두 3만5118대의 차량을 팔았는데 이는 기아차보다 1만 대 이상 판매량이 뒤진 것이다.
기아차가 미국 월간 판매량에서 현대차를 앞선 것은 2018년 7월 이후 20개월 만이다.
기아차는 미국에서 월간 판매량으로는 종종 현대차를 앞지르는 모습을 보였다. 2017년에도 6월과 7월 두 달 연속으로 현대차 판매량을 넘어섰다.
하지만 월간 판매량이 1만 대 이상으로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점유율 차이도 크다. 기아차의 3월 미국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4.6%로 현대차보다 1%포인트 높다.
유럽에서도 기아차가 현대차를 앞질렀다.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ACEA)가 3월 유럽 자동차 판매량을 공개하기 전이라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유럽 각 나라별 판매량을 종합해보면 기아차는 유럽에서 점유율 5.7%를 보이며 현대차(3.6%)를 2%포인트 이상 제쳤다.
코로나19로 각 나라별 자동차시장이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3월 판매량만 놓고 기아차가 현대차를 앞서고 있다고 분석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기아차가 최근 코로나19 국면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살펴볼 때 기아차가 앞으로도 이런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전망이 증권가에서 나오는 점은 긍정적 변화로 읽힌다.
기아차가 다른 완성차기업들보다 먼저 현지공장의 가동을 재개하고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수요 급감시기에 완성차기업들은 유동성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생산중단을 통한 재고 감축 노력을 기울인다”며 “공장 가동을 먼저 재개한다는 것은 차별화된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바라봤다.
기아차는 6일부터 유럽 슬로바키아 공장의 가동을 재개했다. 현대차는 14일부터 유럽 체코 공장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는데 이보다 재개 시점이 일주일가량 빠른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제외한 다른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은 아직도 유럽 공장의 가동 재개시점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기아차는 다른 기업보다 서둘러 공장을 가동하려고 하고 있다.
기아차는 최근 미국 조지아 공장의 가동 재개일을 13일에서 24일로 미뤘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것인데 이 재개시점은 현대차의 앨라배마 공장 가동 재개 예상시점보다 10일 정도 빠르다.
이런 움직임들은 모두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전략형 차종의 원활한 생산을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아차는 미국에서는 텔루라이드로, 유럽에서는 씨드로 판매를 견인하고 있다.
▲ 기아자동차 '씨드'.
텔루라이드는 미국에서 전량 생산되는 현지 전략형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으로 3월에만 5153대 팔렸다. 기아차 다른 차량들의 3월 판매량은 모두 2019년 3월보다 큰 폭으로 후퇴했음에도 텔루라이드만 홀로 성장세를 보였다.
씨드 역시 유럽에서 전량 생산되는 모델이다. 기아차는 지난해 유럽에서만 씨드를 모두 10만 대 넘게 팔며 씨드를 기아차의 대표적 유럽 볼륨모델로 자리매김했다.
기아차가 텔루라이드와 씨드의 판매에 힘을 쏟기 위해 코로나19로 가동이 원활하지 않은 미국과 유럽 공장의 가동률을 끌어올리면서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 연구원은 “기아차는 1분기에 주요 시장에서 수요를 웃도는 성장세를 보이며 이미 차별화한 제품력을 입증했다”며 “기아차가 선진 자동차시장 점유율에서 두 번째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으며 SUV 중심의 신차 출시 사이클을 활용해 한계기업의 점유율을 뺐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무적으로 다른 기업들보다 나은 상황이라는 점도 점유율 상승의 이유로 꼽힌다.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 닛산, 푸조시트로엥(PSA)그룹 등 미국과 유럽, 일본 브랜드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유동성 확보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으로 자동차 판매 확대보다는 재무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때를 틈타 기아차가 현지공장 가동을 이르게 재개함으로써 선두권 기업들의 수요를 일정 부분 뺏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아차의 부채비율은 2019년 기준으로 91% 수준이다.
GM은 396.2%로 최근 글로벌 사무직 대상으로 임금 삭감을 결정했으며 포드(678%)와 닛산(233.7%) 등도 높은 부채비율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