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사망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오랜 분쟁이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지 시선이 몰린다.
재계에서는 호텔롯데 상장 등이 이뤄지면 주력 계열사를 대부분 품에 안은 한국 롯데를
신동빈 회장을 맡고 남은 일본 계열사 중심의 일본 롯데를 신동주 전 부회장이 맡는 계열분리를 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그룹 안팎에 우호세력이 거의 없는 만큼 사실상
신동빈 회장이 이런 방안을 받아들일 여지는 적은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경제계에 따르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인 ‘형제의 난’에서 패배한 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곁에 머물며 정중동의 모습을 보였지만 앞으로 본격적으로 개인 행보를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신 명예회장이 1조 원 가량의 유산을 남긴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한정후견인 절차가 종료되고 법적 비율에 따라 상속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 지분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약 8천억~9천억 원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신 명예회장의 유산까지 받으면 1조 원을 웃도는 돈을 손에 쥘 것으로 점쳐진다.
물론
신동빈 회장이 2015년부터 ‘형제의 난’을 겪은 뒤 롯데지주를 출범시키면서 갖춘 ‘원톱체제’가 지분으로나 영향력으로나 굳건한 만큼 신 명예회장의 사망이 롯데 경영권에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동주 전 부회장이 확보한 자금을 따로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데다 그동안 공을 들여온 신 명예회장의 건강을 돌보는 일도 마친 만큼 다시 보폭을 넓힐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우선 신동주 전 부회장이 보유한 현금으로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 복귀해 경영에 다시 참여한 뒤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의 분리 경영을 다시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요 주주를 살펴보면 광윤사 28.1%, 종업원지주회 27.8%, 공영회 13.9%, 임원지주회 6%,
신동빈 회장 4%, 신동주 전 부회장 1.6% 등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광윤사 지분 50%+1주를 보유해 광윤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모습. <연합뉴스> |
다만 이전처럼
신동빈 회장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신동빈 회장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며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의 분리경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신동빈 회장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왔다.
2018년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까지도
신동빈 회장의 해임 건의안을 내놓던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9년에는 해임 건의안 대신 자신의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선임을 요구하며 화해를 원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9년 초
신동빈 회장에게 경영권 분쟁을 멈추고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를 해소하는 데 함께 힘쓰자는 자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미 일본 주주 상당수가
신동빈 회장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명분 없이는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을 빼앗아오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오랫동안 지속해온 ‘형제의 난’에서 충분히 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때문에
신동빈 회장의 숙원사업인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 분리작업을 신동주 전 부회장이 도운 뒤 롯데지주체제에서 분리된 일본 롯데를 신동주 전 부회장이 맡는 방식으로 계열분리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구체적 실적은 파악하기 어려운 가운데 호텔롯데의 무보증사채 발행 신고서에서 그 크기를 짐작할 단서만 엿볼 수 있다.
호텔롯데는 2013년 처음으로 일본 롯데홀딩스의 연결기준 재무정보를 공개한 뒤 2017년부터는 별도기준 재무정보만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일본 롯데홀딩스는 2018년 3월 별도기준 자산규모가 2조8619억 원으로 2017년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에 매출 1755억 원, 영업이익 1489억 원을 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2013년 3월 기준으로 한국 및 한국관할 해외법인을 제외하면 일본에 계열사 38곳과 해외 계열사 16곳 등 계열사 54곳을 거느리고 있었다.
롯데, 롯데상사, 미도리상사, 롯데아이스, 메리초코렛, 지마롯데마린즈, 롯데건강산업, 롯데리아, 크리스피크림도넛재팬, 긴좌코지코너, 롯데부동산, 광윤사, 롯데물산, 패밀리, 롯데서비스, 롯데그린서비스 등이다. 롯데상사와 롯데물산, 롯데리아 등은 국내 계열사와 이름만 같을 뿐 다른 회사다.
한국 롯데그룹의 덩치가 압도적으로 크긴 하지만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한국롯데와 연결고리가 끊어지더라도 일정 수준의 그룹 규모는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호텔롯데 상장을 마지막으로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모두 한국 롯데로 옮기게 된다면
신동빈 회장으로서도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가 촘촘히 얽혀있던 2015년 경영권 분쟁 당시와 달리 일본 롯데와 계열분리하는 방안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다만 ‘형제의 난’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이슈들로
신동빈 회장과 관계는 물론 롯데그룹 안팎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을 향한 시각이 좋지 못한 점이 여전히 관건으로 남아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호텔롯데 상장 방해 등을 꾀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신동주 전 부회장의 도움이 없더라도 호텔롯데 상장에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신동빈 회장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계열분리보다는 롯데지주 지분을 사들여 중장기적으로 경영권 분쟁을 준비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롯데지주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신동빈 회장이 지분 11.7%로 최대주주로 있으며 신 명예회장 3.1%, 신동주 전 부회장 0.2% 등을 보유하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보유한 현금이 상당한 만큼 롯데지주 지분을 차츰 늘려 롯데지주 경영에 참여하는 방안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신동빈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42.6%를 보유하고 있고 롯데지주가 자사주로 32.5% 등을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지분경쟁을 벌일 만큼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수가 부족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정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우호지분이 없는 상태에서는 경영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