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은 자체 현금만으로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상환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유동성을 조달해야 하는데 실적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면 한진중공업을 바라보는 투자업계의 평가가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5일 한진중공업에 따르면 지난해 이 사장은 조선부문에 특수선사업만 남은 한진중공업을 이끌며 수주에서 큰 성과를 냈다.
2019년 한진중공업은 6320억 원 규모의 특수선을 수주했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자회사인 수빅조선소의 출자전환 이후 상선을 건조하지 않는 만큼 조선부문의 수주목표를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연초에 내부적으로 설정했던 수주목표를 150% 달성한 성과”라며 “국내 최초의 공기부양선과 해군의 첨단 상륙함정 등을 독자 개발해 온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눈여겨 볼 점은 한진중공업이 수주한 특수선들 가운데 군함이 아닌 다목적 대형방제선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 건조되는 다목적 대형방제선일 뿐만 아니라 한진중공업으로서도 첫 도전이다.
이 사장은 한진중공업이 쇄빙선이나 탐사선 등 군함 이외의 특수선을 건조해 본 경험이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이처럼 수주 선박의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조선부문의 다각화 전략은 수주 선박의 종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신사업 추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올해부터 국제해사기구가 시행하는 선박연료유 황함량규제의 수혜를 보기 위해 선박 수리 및 개조(레트로핏)사업을 일찍부터 준비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2월 동진상선으로부터 80억 원 규모의 스크러버(황산화물 세정장치) 설치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4월 현대글로벌서비스와 기술협약을 맺고 스크러버 설치사업의 엔지니어링 용역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형조선사들은 수주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간소화하고 주력으로 건조하는 선박 종류를 좁힌다.
한진중공업과 마찬가지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매진하는 STX조선해양을 예로 들면 특수선(방산 부문)사업을 삼강엠앤티에 매각하고 선박 수주는 MR탱커(순수화물 적재량 5만 DWT 안팎의 액체화물운반선)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장은 오히려 수주 선박과 사업의 다각화를 통해 경영 정상화의 길을 열려 하고 있다.
군함 건조사업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계획대로만 발주가 진행되며 건조기간이 길다는 특성 탓에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는 점도 사업 다각화를 서두르게 하는 요인이다. 한진중공업의 경영위기가 유동성 문제에서 초래된 만큼 현금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2020년 상환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가운데 상환계획을 마련한 채권을 제외하더라도 6천억 원가량의 부채 부담을 지고 있는데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량은 2019년 3분기 기준으로 301억 원에 그친다. 단기차입금 1048억 원을 상환하기조차 버거운 상황에 놓여있다.
설상가상으로 한진중공업은 동서울터미널 부지와 인천 북항부지 등 비핵심자산을 이미 대부분 매각한 상태라 돈 나올 곳이 딱히 없다. 외부 자금조달 등으로 재무구조를 다시 짜는 ‘리파이낸싱’ 작업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외부에서 유동성을 조달할 때 금리다. 투자업계가 한진중공업의 전망을 밝게 평가할수록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장은 조선부문의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위해 단기간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선박 개조사업으로 다각화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진중공업은 2019년 3분기까지 건설부문이 누적 영업이익 260억 원을 거둔 반면 조선부문은 누적 적자 308억 원을 냈다. 조선부문이 한진중공업의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선박 개조사업은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익사업”이라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앞으로 실적 개선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