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인사는 단순히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만약 KT 임원인사에서 주요 임원들이 황 회장의 사람들이 아니라 구 사장이 제시하는 비전을 책임질 수 있는 인사들로 채워진다면 KT가 황 회장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구 사장을 계속 따라다니고 있는 ‘황 회장의 복심’이라는 타이틀을 지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KT는 황 회장의 취임 이후 2014년과 2017년 임원인사를 제외하면 모두 연말에 인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음 대표이사 후보가 연말에 확정되면서 임원인사가 1월로 밀렸다.
한쪽에서는 황 회장이 물러나기 전인 1월에 임원인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두고 구 사장이 자기 색깔의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구 사장은 KT의 다음 최고경영자(CEO)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전부터 유력한 다음 CEO로 거론됐는데 가장 큰 이유가 황 회장의 ‘복심’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구 사장은 황 회장이 KT 회장직에 오른 이후 첫 비서실장을 지냈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황 회장을 곁에서 보좌해왔다.
황 회장 역시 2018년 KT의 조직을 개편하며 가장 덩치가 커진 조직인 커스터머미디어부문을 구 사장에게 맡기는 등 구 사장에게 신뢰를 보내왔다.
하지만 KT 아현지사 화재사고, 경영고문 불법위촉사건, 불법 정치자금사건, 주가 하락 등으로 황 회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최근 KT가 새로운 CEO를 맞아 황 회장의 시대와 단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KT의 실적이 좋지 못한 것과 관련해 황 회장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영업이익은 2016년 1조4400억 원이었으나 매년 조금씩 하락해 2018년에는 1조2615억 원까지 떨어졌다. KT는 2019년에도 2018년보다 2.6% 하락한 1조2285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는 황 회장의 취임 초기 3만 원대였으나 2019년 12월30일 종가 기준 2만7천 원까지 떨어졌다.
이번 CEO 선임절차에서 구 사장과 함께 도전했던 후보자들 가운데 일부는 최근 KT 전직 임원들의 모임인 케이비즈니스포럼을 통해 구 사장에게 황 회장과 단절해야 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구 사장이 황 회장의 ‘옛 체제’와 완전히 단절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실질적 경영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사장이 황 회장과 단절을 어느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도 일각에서 나온다.
구 사장은 KT의 다음 CEO를 결정하기 위한 최종 면접에서도 ‘황 회장의 사람’이 아니라 30년이 넘게 KT에서 근무해온 정통 ‘KT맨’이라는 사실을 줄곧 강조했으며 이사회가 구 사장을 최종후보로 선택한 데에도 구 사장의 이런 태도가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T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