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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맞닥뜨린 경영환경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수십년 동안 겪은 환경과 완전히 다르다.
정 회장이 묵묵히 자동차를 생산하면 국민들이 애국적 마음으로 ‘국산차’인 현대차를 선택했다.
그러나 정의선 부회장은 이제 여러 자동차 가운데 현대차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내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안티 현대차’는 정의선 부회장이 해결해야 할 불편한 ‘유산’이다.
안티 현대차는 급기야 현대차의 내수시장 판매량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금 현대차가 안티 현대차라는 여론을 잠재우지 못하다면 ‘정의선 부회장 시대’의 현대차는 내수시장을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수시장이 무너지면 해외시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내수시장이 탄탄하게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안티 현대차는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차를 끌고 가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 현대차의 무거운 과제, 안티 현대차
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안티 현대차는 현대차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현대차는 올해 들어 내수시장에서 뚜렷한 정체를 보이고 있다. 상반기 현대차의 판매량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3% 가량 뒷걸음질했다.
이 성적표는 현대차가 상반기 쏘나타의 파생모델, 신형 투싼 등 신차를 출시하고 5, 6월 아반떼 등 주요 차종을 대상으로 사상 최초의 36개월 무이자할부라는 카드를 꺼내든 뒤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
신차와 가격정책만으로 수입차로 돌아선 국내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기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현대차의 판매량이 감소한 이유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안티 현대차 여론이 꼽힌다.
현대차는 과거 안티 현대차 현상을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일부의 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을 접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제 구매력을 갖춘 20~30대가 되면서 안티 현대차 여론이 현대차의 내수 판매량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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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 정의선, 적극적으로 안티 현대차 대응 주도
정의선 부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고위 경영진들도 안티 현대차의 심각성을 느끼고 대처를 강조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수입차가 늘어나는 데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면서 “내부적으로 비상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인터넷 댓글은 많은 분이 쓰기 때문에 좋은 댓글도 있고 안 좋은 댓글도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저뿐 아니라 우리가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안티 현대차 여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정 부회장의 지시로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국내영업본부 안에 소비자 전담조직인 국내 커뮤니케이션실을 신설했다. 국내 커뮤니케이션실은 온라인의 잘못된 루머 등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소비자와 현대차의 소통을 위해 힘쓰고 있다.
정 부회장은 매일 국내 커뮤니케이션실로부터 이메일로 보고를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메일 내용은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와 ‘보배드림’과 같은 온라인 자동차동호회에서 나오는 현대차에 대한 부정적 의견들이다.
정 부회장은 이 과정에서 다소 심한 내용이 있어도 여과 없이 보고하라는 강력한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소 적나라할지라도 현대차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달라지는 현대차의 인식
현대차 경영진 사이에서도 안티 현대차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윤갑한 현대차 사장은 올해 현대차 임단협 교섭에서 내수시장 동향을 설명하며 “안티 현대차 탈피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내수시장에서 현대차가 위기를 겪고 있는 원인으로 안티 현대차를 꼽은 것이다.
김충호 현대차 사장은 지난 4월 열린 서울모터쇼에서 “현대차는 앞으로 고객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함께하는 기업, 고객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그러기 위해 모든 임직원들이 더 낮은 자세로 더 많이 듣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며 오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모습은 김충호 사장이 지난해 3월 “안티 현대차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조가 주된 원인”이라고 대답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현대차의 달라진 분위기는 현대차 안팎에서 진행되는 여러 활동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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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오른쪽) 현대차 부회장과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가 지난 2월 현대차 울산5공장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
◆ 몸낮추는 현대차
현대차의 태도변화를 잘 보여준 것은 5월 말 있었던 신형 투싼의 급발진 의심사고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현대차는 사고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식 블로그에 공식입장을 밝혔다. 현대차는 운전자와 가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뒤 수사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급발진 의심사고와 관련해 결과가 발표되기 전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는 그동안 사고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매번 ‘모르쇠’로 일관해 비난을 받았다.
현대차는 지난 3월 일부 제네시스 차량에 장착된 타이어에 대해 소음과 진동 등의 불만이 제기되자 4만3천 대를 대상으로 타이어를 무상교체하기로 했다.
제네시스 동호회를 중심으로 불만이 계속 나오자 자체조사를 벌인 뒤 타이어 무상교체를 결정한 것이다.
현대차는 고객과 소통도 늘리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4월 자동차 동호회 보배드림 회원 40명을 대상으로 7단 듀얼클러치변속기(DCT)가 장착된 차량을 시승하는 행사도 열었다. 시승이 끝난 뒤 현대차의 변속기 담당 연구원이 직접 7단 DCT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에 답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보배드림은 국내에서 가장 큰 온라인 자동차동호회로 현대차에 대해 부정적 글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당시 시승회는 현대차가 보배드림 회원들에게 먼저 제안해 열렸다.
현대차는 이밖에도 자동차 관련 유명 블로거를 초청해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
류창승 현대차 국내 커뮤니케이션실 이사는 블로거를 초청한 자리에서 “앞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소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달라진 현대차 태도, 과연 통할까?
안티 현대차 여론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닌 만큼 현대차의 이런 노력에도 부정적 인식이 단번에 사라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정 부회장도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 현장에서 “작은 얘기라도 바로 시정하는 그런 마인드를 전체 직원들이 가지도록 하는 중”이라며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올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법규와 서비스 등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지금이라도 리콜이나 안전, 가격에 대한 문제를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한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젊은층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좀 더 획기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의 또 다른 전문가는 “수입차로 돌아선 소비자가 다시 현대차로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소통을 강조하고 수입차만큼 성능이 좋은 차를 내놓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과거 일본에서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린 것처럼 현대차도 국내에 공장을 증설하고 채용을 확대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당장 비용이 더 들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