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충칭에 제4공장을 짓기로 확정했고, 이르면 연내 착공할 것이다."
지난해 6월 중국 충칭 시장의 말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아직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중국시장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에게 골칫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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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뉴시스> |
지난해 3월 당시 설영흥 현대차 부회장은 충칭 당서기를 만나 공장설립 문제를 논의했다. 충칭 당서기는 설 부회장과 친분이 있는 사이다. 친분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이징 당서기였던 그는 중국에 진출한 현대차의 1공장과 2공장 건설을 적극 지원했다.
설 부회장은 이 친분을 바탕으로 쉽게 충칭시의 협조를 얻어냈다. 이어 정회장이 중국을 방문해 중앙정부의 고위 인사를 만나는 일정도 잡혔다. 이때까지 제4공장 건설을 연내에 시작하겠다는 계획이 무리없이 실행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 고위 인사인 상무위원과 면담이 취소되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상무위원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정 회장과 면담을 거부했다. 설 부회장은 여러 번 면담을 다시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현대차 안팎에서 충칭으로 못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베이징시의 한 공무원은 이와 관련해 "솔직히 중앙정부는 현대차 4공장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며 "자동차시장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서도 서둘러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고 토종업체들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정 회장이 지난달 27일 중국에 갔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정부 인사는 만나지 못했다. 대신 현대차에 호의적인 충칭 당서기를 만났다. 정 회장은 "충칭은 공장의 입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도시"라며 "현대차가 중국 내륙에서 판매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서부 자동차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충칭 당서기는 "충칭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설 부회장과 충칭 시장의 서명이 담긴 협의서도 교환했다. 하지만 이 협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정 회장은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얼마 뒤인 지난 11일 설 부회장이 물러났다. 현대차는 설 부회장의 사표수리를 발표하며 "후진을 위해 용퇴하겠다는 본인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설 부회장이 사퇴한 진짜 이유는 중칭 제4공장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설 부회장의 현지 인맥이 주로 후진타오 주석 시절 인사들이었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이 권력을 쥐면서 더이상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도 설 부회장의 사퇴 이유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중국정부는 왜 현대차에 공장 허가를 내주는데 미온적일까.
현대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중국 내부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연간 생산량 30만대 규모의 공장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고용유발 효과가 큰 만큼 지역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충칭을 제외하고도 산시성, 후베이성, 허베이성 등이 현대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정부 사이의 이런 경쟁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 중앙정부 최고위급 인사의 지원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지난 11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 참석한 뒤 충칭을 찾아 현대차 제4공장 문제를 충칭 당서기와 논의했다고 한다. 시진핑의 방한 선물로 현대차 제4공장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는 제4공장 설립을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충칭에 4공장을 건립하려는 계획에 변함이 없다"며 "최성기 신임 중국사업총괄 담당 사장도 기존에 설 부회장과 함께계속 일을 해왔기 때문에 업무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기 사장도 1983년 현대차에 입사한 뒤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담당해온 만큼 어느 정도 중국인맥을 쌓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