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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삼성 그리고 공동체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5-06-12 19: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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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와 삼성 그리고 공동체  
▲ 전남지역에서 메르스 양성판정을 받은 환자가 처음 나온 11일 오전 전남 보성군 한 마을이 방역당국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뉴시스>

공동체(community)란 어원적으로 com(함께)과 munus(선물주기)가 합쳐진 말이다. 사람들이 '서로 선물을 나누는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단순한 얘기인 것 같지만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간단치 않다.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에 교환관계와 가치 등의 복잡한 문제들이 파생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류학자들의 설명은 되새겨볼 만하다.


원시사회에서 선물교환이 어떻게 작동하지는지를 들여다보자.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원시부족 사이에서 이뤄지는 선물 혹은 증여의 문화를 연구했다. ‘포틀래취’와 ‘쿨라’가 대표적이다.

포틀래취는 “식사를 제공하다” 혹은 “소비하다”라는 뜻의 치누크 인디언의 말이다. 축제 때 사람들을 초대해 먹이고 선물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결혼식 뒤 피로연을 베푸는 것과 같다.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포틀래취의 진짜 의미는 초대에 응한 사람이 선물을 받으면 그 이상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물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경쟁하듯 선물게임이 벌어지고 가진 것을 더 많이 선물하는 사람이 이기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최종적으로 가장 적게 가진 자가 승자로 최고의 명예와 권위를 얻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부족의 추장에 오른다.

트로브리얀드 군도에서 행해지는 ‘쿨라’는 좀 다르다.

선물하기가 양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연쇄의 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교환관계가 성립되는 데 그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선물하기가 사회전체로 확산되는 효과를 낳는다.

모스는 이런 사례를 통해 선물의 체계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원시부족사회가 아닌 복잡한 문명사회도 근원을 따져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레비스트로스는 모스가 선물에 교환의 개념을 포섭한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면서 답례를 기대하는 이상 선물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얼마짜리를 줬으니 상대방도 그만한 값어치를 주기를 기대하는 순간 선물은 채무로 변질된다.

모스나 레비스트로스의 관점에 차이가 있지만 선물하기를 통해 공동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꽤나 적절하고 흥미롭다.

  메르스와 삼성 그리고 공동체  
▲ 마르셀 모스
선물은 말 그대로 ‘좋은 물건’이다. 상대방이 받고 싶은 것을 줄 때 선물이 될 수 있다. 모스의 설명을 빌어 말하자면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상대방에게 더 많은 것을 선물하고 그것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다. 나눔과 배려가 한 세트인 까닭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이 두려운 것은 선물하기와 딱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내가 주고 있거나 줄 수 있다는 것, 전염병이 공동체에 위협을 가하는 진짜 이유다.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최근 메르스 사태를 이렇게 정의했다.

“전염병은 인간으로 하여금 서로를 미워하게 만듭니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 적개심, 혐오감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품도록 강제하는 거죠. 메르스 사태를 접하면서 전염병 자체보다 그로 인한 후유증이 걱정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체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체액을 교류하는 것, 즉 감염을 감당하는 행위죠. 그런데 전염병으로 내 몸을 강력하게 아끼게 되면 결국 쪼개지기 마련입니다. 공동체의 유대·연대를 힘들게 만드는 셈이죠.”

강 박사는 이런 이유로 전염병이 사람들을 쪼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친자본적이고 파시즘적인 시스템을 강화한다고 지적한다.

선물하기가 통하지 않을 때 공동체는 약화한다.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도 이런 모습이다. 소수가 물과 기름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절대권력을 누리는 세상이다.

삼성물산 합병을 놓고 벌어지는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삼성그룹의 대결도 어찌 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쪽은 최대한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최대한 많이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다.

메르스는 나누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눔으로써 공동체에 위협을 가한다. 국가대표 ‘삼성’과 글로벌 자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나눠야 할 것을 나누지 않기 위해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메르스와 삼성 그리고 공동체'를 한 줄에 나란히 써보는 이유다.

약간 뜬금없는 얘기를 덧붙이자면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창업자 폴 엘리엇 싱어는 유대인이다. 앞서 언급한 세계적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역시 유대인이다. 공동체에 관한 한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관심이 높다.

폴 싱어는 최근 국내에 탐욕스러운 유대인 투기자본가의 악랄한 전형으로 국내 언론을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빌 게이츠에 버금가는 세계적 '기부천사'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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