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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갑부 허민의 '이상한' 돈쓰기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4-04-11 17: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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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갑부 허민의 '이상한' 돈쓰기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

허민(39) 원더홀딩스 대표는 독립구단 고양원더스의 구단주다.

고양원더스는 2011년 12월 창단됐다. 야구 전문가들은 2012년 고양원더스 구단 운영에 약 40억 원이 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경기도가 지난해와 올해 경기개발연구원과 한양대에 의뢰한 독립구단 운영자금 조사결과를 보면 한 해 12억7천만 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허 대표는 이 금액의 3배가 넘는 돈을 고양원더스에 쏟아붓고 있다. 독립구단이 많은 일본에서도 구단 평균 운영비는 7억~8억 원 수준이고, 15억 원을 넘지 않는다.

고양원더스 구단 운영비는 대부분 허 대표의 사재에서 나온다. 쉽게 말해 1년에 40억 원의 사재를 쓴다는 얘기다. 고양원더스는 ‘사업’이 아니다. 더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투자’도 아니다. ‘기부’나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기부금은 32억 원이었다. 영업이익 3조3천억 원이었으나 기부는 그 정도 수준이었다. 7500억 원 매출을 기록한 엔시소프트의 지난해 기부금도 19억 원 정도다.

허 대표는 2011년 9월 고양원더스 창단을 발표할 때 “나는 야구단을 하려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구단에 대해 누가 뭐라든 개의치 않는다”며 “나 스스로 자랑스러우면 그만”이라고도 했다.

그가 고양원더스에 털어넣는 돈 40억 원은 위력을 발휘했다. 허 대표는 ‘야신’이라고 불리는 김성근 전 SK 감독을 영입해 전권을 부여했다. 그리고 고양원더스는 2012년 프로야구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에서 20승을 거뒀고 지난해에는 승률 6할을 넘겼다.

고양원더스는 외인구단이라 불린다. 선수들은 프로야구단에서 외면받고 야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모여있다. 그들 가운데 지난해까지 모두 17명이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허 대표는 “독립구단을 운영하는 동안 단 한 명의 선수라도 1군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소망을 훌쩍 넘겼다.

아무리 야구에 ‘미쳤다’고 해도 한 푼도 나오지 않는 독립구단에 일년에 사재 40억 원 정도를 투입하는 허 대표를 보면서 절로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허 대표는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은 것일까? 돈을 어떻게 벌었길래 그렇게 비싼 '취미생활'을 하는 것일까? 야구는 그에게 무엇인가? 돈에 대한 그의 철학은 무엇일까?

◆ 18번의 실패와 1번의 성공

허 대표는 게임에서 고양원더스를 운영할 재력을 만들었다. 게임은 그가 야구만큼이나 좋아하는 취미다.

허 대표는 지난 2001년 서울대 동기 5명과 함께 네오플을 차렸다. 그와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게임 친구들이었다. 허 대표는 이들과 함께 개발한 게임 ‘던전 앤 파이터’의 성공으로 네오플의 몸집을 불렸다. 이 게임의 성공한 뒤 회사를 넥슨에 팔아 수천억 원의 돈방석에 앉았다.

허 대표는 1995년 서울대 공대에 들어갔다. 그는 야구를 하고 싶어 서울대에 들어갔다. 서울대 야구부에 들어갔지만 어깨 부상을 입어 후보생활만 했다. 서울대 총학회장에 출마해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이 됐다.

허 대표는 네오플에서 2001년 4월 처음으로 온라인 소개팅 게임 ‘캔디바’를 만들었다 이 게임은 허 대표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총학생회장으로 일하던 시절 친구가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요청했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캔디바는 출시 10개월 만에 매출 10억 원을 올렸다. 허 대표가 네오플 경영을 계속할 수 있은 종잣돈이 됐다.

그러나 허 대표는 그 성공 이후 실패를 거듭했다. 캔디바 이후 내놓았던 게임 18개가 모조리 실패하면서 30억 원의 빚을 졌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를 구원해 준 게임이 바로 2005년 6월 발표된 던전 앤 파이터다. 이 게임은 당시 삼성전자가 개발자금을 투자하고 퍼블리싱을 맡았다. 서비스 6개월 만에 회원 수 100만 명, 동시접속자 수 5만 명을 돌파했다.

허 대표는 이 게임을 통해 당시에 낯선 개념이었던 ‘부분유료화’를 실시했다. 그는 “처음엔 누구나 무료로 게임을 즐기게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유료화로 정책을 바꿨다”며 “던전 앤 파이터는 그런 유료화 정책에 앞장선 게임”이라고 말했다. 이 시스템은 큰 매출을 안겨다 줬다.

◆ 30대 초에 2천억을 손에 쥐다

허 대표는 이 게임 출시 다음해 240억 원을 받고 한게임과 네이버를 운영했던 NHN에 네오플의 지분 60%를 넘겼다. 한게임과 결합하면서 던전 앤 파이터는 2007년 말 기준으로 전체 가입자 수 750만 명, 동시접속자 수 16만 명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월 매출도 50억 원을 넘겼다.

  청년갑부 허민의 '이상한' 돈쓰기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가 2012년 12월4일 '2012 일구상 시상식'에서 일구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다 허 대표는 2007년 팔았던 네오플의 지분을 다시 사들여 경영권을 되찾는다. 그는 “NHN에서 다시 독립한 뒤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며 “너무나 지쳐 에너지가 바닥난 상황에서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 때문에 같이 일하는 식구들에게도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다시 인수한 시점부터 회사를 되팔 고민을 했다는 얘기다. 바로 그때 넥슨이 나섰다. 넥슨은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게임이 필요했다.

허 대표는 던전 앤 파이터 서비스 3주년을 앞둔 2008년 7월 네오플의 지분 59.2%를 넥슨에 넘겼다. 대부분은 허 대표가 보유하던 지분이었다. 게임업계는 당시 넥슨이 인수자금으로 동원한 금액이 2천~3천억 원 정도라고 추산한다. 허 대표는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거의 2천억 원을 손에 쥐게 된다.

허 대표는 넥슨에 네오플 지분을 넘긴 뒤 네오플 직원 220명에게 수십억 원의 주식을 배분했다. 그는 인수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날 “나를 포함한 네오플 내부 주요 주주들이 지분을 일정량 모아 전 직원에게 나눠줄 계획”이라며 “함께 고생했는데 누구만 결실을 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허 대표는 이 거래로 ‘먹튀(돈만 먹고 튀었다)’라는 말도 들었다. 지분매각 뒤 네오플 경영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허 대표 스스로도 뒷날 “(어떤 사람들은) 내가 비싼 가격에 회사를 팔아 캐시 아웃을 잘했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 경영자는 행복하지 않았다

허 대표는 네오플을 내려놓은 뒤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 2009년 버클리 음대에 입학해 작곡을 공부하기도 했다. 입학 오디션에 떨어졌지만 수백통의 메일을 보내 결국 입학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또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배우기도 했다.

이 시기는 충전의 시기였던 것 같다. 경영도 하고 게임도 개발하면서 너무 지쳤다고 한다. 허 대표는 네오플을 넥슨에 넘겨준 뒤 “가능하면 대주주나 대표이사로 남으려 했으나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매출이 늘고 회사는 성장하는데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며 “완전히 방전된 느낌으로 1년 가까이 버텼다”고 털어놓았다.

허 대표는 2010년 10월 소셜커머스 웹사이트 위메프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현업복귀를 알렸다. 이번에 경영자가 아니라 투자자였다. 전 네오플 출신 직원들로 구성된 나무인터넷(현 위메프) 창립에 투자했던 것이다. 허 대표는 그 자리에서 “실리콘밸리에서도 열정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해주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며 “그때 한국에 돌아가서 열정과 아이디어에 있는 벤처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메프 창립 때부터 지분 90%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위메프가 사업 시작과 함께 버스 1천 대를 동원해 홍보하고 방송광고에 수십억 원을 쏟아붓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허 대표의 투자 때문이었다. 소셜커머스업계 관계자들은 이때 들어간 투자금액이 150억 원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 부동산 투자로 임대료만 매년 100억

허 대표가 이런 투자를 할 수 있었던 원천은 부동산이었다. 또 그에게 부동산은 사재를 털어 독립구단을 운영하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허 대표는 넥슨에서 받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했다. 2009년 3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미래에셋타워 2개 동을 885억 원에 매입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시 “미래에셋타워는 지리적 요건이 좋은 데다 우량 임차인이 사무실을 임대해 공실률이 거의 없다”며 “투자용이나 실수요용이나 모두 적합한 건물”이라고 평가했다. 허 대표가 투자한 위메프는 지난해까지 이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허 대표는 그 뒤에도 계속 부동산을 사들인다. 2012년 9월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유한회사 너브를 통해 미래에셋타워에서 약 100m 떨어진 토지 1743㎡를 660억 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현재 이곳에 지난 1월15일 입주한 위메프 신사옥이 있다.

2012년 허 대표의 부동산 자산만 2천억 원이라고 한 신문사가 보도했다. 허 대표 스스로도 “매년 부동산 임대업으로 100억 원을 벌어들인다”고 털어놓았다.

허 대표는 또 투자회사를 설립해 여려 곳에 투자한다. 그는 2009년 3월 원더홀딩스를 설립해 투자사업을 하고 있다. 원더홀딩스는 현재 위메프와 고양원더스 외에도 원더피플(애플리케이션 개발) 에이스톰(모바일 게임) 등 허 대표가 투자한 여러 기업을 거느린 지주회사로 자리하고 있다.

  청년갑부 허민의 '이상한' 돈쓰기  
▲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가 2012년 8월9일 프로야구 LG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전설적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왼쪽)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 행복의 마지막 계단이 고양 원더스라는 허민

허 대표는 잠시 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위메프가 업계 4위까지 밀리던 2011년 7월 그는 직접 대표이사를 맡았다. 실시간 쿠폰 서비스 ‘위메프 나우’와 지역 연계 포탈 웹사이트 ‘우리동네 네이버’ 개장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신규사업에서도 허 대표의 주된 역할은 50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투자자의 역할이었다. 당시에도 실질적 경영은 현재 위메프 대표를 맡고있는 박은상 대표가 했다고 한다. 허 대표는 지난해 7월 위메프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허 대표의 40년도 안된 이력을 보면 벤처 붐에 편승해 돈을 번 전형적인 ‘청년갑부’다. 우연한 기회에 게임사업에 뛰어들어 수천억 원의 돈을 손에 쥐었고 그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해 일년에 100억 원이 넘는 임대료를 벌어들이고 있다. 그 돈으로 고양원더스에 해마다 40억 원 정도를 내놓는다.

좀 다른 모습은 돈을 쓴다는 사실이다. 돈을 버는 사업과 무관해 보이는 일에도 큰 돈을 쓴다는 점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가면 좋을 거라고 해 갔더니 그렇지 않았다. 학생회장 하면 좋다고 했는데 역시 기대와 달랐다. 돈 많이 벌면 세상이 바뀐다고 배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늘 욕망의 계단을 따라 올라갔지만 그것은 행복과 별개였다.”

허 대표는 행복의 마지막 계단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랑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양원더스 야구단도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허 대표는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양원더스 운영비 1년 40억원은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그 누군가에게는 기회를 제공하는 돈인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누군가는 허민 구단주가 좋아하는 야구에 한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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