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리더는 조직의 대변자인 동시에 조직 구성원의 보호자가 돼야 한다.
김경성 서울교대 총장이 최근 서울교대 성희롱사태를 수습하며 보여준 모습에서는 학교 대변자 그 이상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김 총장은 서울교대 성희롱사태의 논란이 급속도로 커지자 13일 담화문을 통해 학교의 방침과 가해학생들의 징계수준을 발표했다.
그러나 김 총장이 서울교대 홈페이지에 띄워놓은 담화문에는 이번 사건에서 가장 힘들었을 성희롱 피해학생을 위한 구제책은 빠져있었다.
현재 서울교대 커뮤니티 등에서 서울교대 재학생들은 김 총장의 이번 사태에 대한 미온적 태도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교대 성희롱사태는 서울교대 국어교육과에 재학하고 있는 한 여학생이 3월 같은과 남학생들의 성희롱 사실을 폭로하며 시작됐다.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국어교육과 남학생들은 2016년 선후배 대면식에서 신입 여학생들의 사진과 개인정보를 모아 책자로 만들어 여학생들을 평가했다.
5월에 추가 폭로가 나왔다. 서울교대 남학생들이 조별과제 여학생을 불법촬영하고 서울교대를 졸업한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5학년 학생을 놓고 "예쁜 애는 따로 챙겨먹어"라는 등 단체채팅방에서 성희롱한 것이 확인됐다.
피해학생들의 용기로 서울교대 성희롱사태는 수면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김 총장의 대처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학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담화문 도입부에서 “이번의 사태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서울교대라는 우리의 공동체가 지녔던 과거의 잘못된 관습과 그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우리들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분명히 드러나있는 성희롱사건을 ‘우리들 모두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
지난해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은 성고충 전문상담관들과의 간담회에서 “여성들이 행동거지라든가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된다"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 총장이 피해학생을 성문제의 원인 제공자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성희롱사태를 ‘우리’의 문제로 뭉뚱그려버림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문제가 희석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또 김 총장은 가해학생들을 유기정학 2~3주라는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했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분리 교육 등 피해학생을 위한 구제책은 내놓지 않았다.
교육대학교는 같은과 학생들이 4년 동안 거의 유사한 강의를 함께 수강한다. 가해학생들은 2~3주 징계를 받은 뒤 학교로 돌아와 피해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수업을 듣게 된다.
김 총장이 서울교대 학생들의 진정한 보호자라면 피해학생 구제책을 가장 먼저 내놓고 피해학생들이 더 이상 추가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발빠르게 대처했어야 한다.
서울교대를 졸업한 한 학생은 “김 총장이 학교 이미지 때문에 사건을 크게 키우지 않기를 원하는 것 같다”며 “그가 학교만 생각하고 학교만 대변하는 사이에 피해학생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이 담화문을 통해 성평등교육 강화, 학생 인권센터 개설 등 피해 재발 방지대책을 내놓은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 사태에서 그가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은 이 사태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다.
김 총장이 조직의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보호자 역할을 했다면 진정한 교육자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비즈니스포스트 백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