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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구입 고객에게 사은품 제공을 알리고 있는 인터넷서점 '알라딘' 홈페이지 첫 화면 |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6개월째로 접어들었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책값 거품을 막고 영세서점을 살리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독서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인 데다 제도시행 뒤 책값 인하폭도 크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출판계는 개정 도서정가제를 다시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출판정책연구회는 7일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출판산업 긴급현안 해결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백원근 출판정책연구회장은 “여전히 할인 마케팅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출판시장의 현상을 개혁하는 방법은 확고한 도서정가제로 재개정이 유일하다”고 밝혔다.
백 회장은 국내 출판시장이 가격할인경쟁 대신 가치경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직접할인과 유사할인이 여전히 허용되고 있어 현행 도서정가제로 출판시장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소비자 할인폭이 줄어 온오프라인 대형서점들의 이익률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LIG투자증권은 예스24에 대해 도서정가제 도입으로 평균 판매가가 올라 “이익률이 2014년 1.2%에서 2015년 3.7%로 개선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동네서점들도 정가제 시행에 따라 다소 훈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서의 할인율이 정가의 15%로 제한되면서 판매가 제도시행 전보다 약 10% 이상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대했던 책값인하 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도서정가제 시행 첫날인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지난 2월25일까지 약 100일 동안 단행본 평균 정가는 1만8648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2% 하락하는 데 그쳤다.
소비자들이 제도시행 전 책을 구매할 때 누렸던 할인폭이 최대 50%를 넘기도 했던 데 비하면 체감책값은 비쌀 수밖에 없다.
도서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됐던 재정가 책정도 그다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출판사들은 출간한 지 18개월이 지난 도서에 대해 가격을 다시 정해 문체부에 신청할 수 있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정가를 신청하면 기존의 책값에 거품이 끼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고 일일이 정가를 다시 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출판사들이 재정가에 잘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형 온라인서점이나 대형 출판사들이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 할인이나 사은품 증정같은 마케팅도 여전한 것으로 지적된다.
온라인서점들은 가격할인을 할수 없게 되면서 도서구입고객에게 사은품이나 경품을 제공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이 TV홈쇼핑에 어린이용 도서전집 등을 판매하면서 할인과 사은품을 증정하는 경우 개정도서정가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지적된다.
비룡소의 북클럽 상품 '비버'와 삼성출판사의 '에버북스', 또 미래엔의 아동용 도서 브랜드 '아이세움' 등 대형 출판사들은 최근 실제 구성한 도서정가보다 낮은 할인판매 방식으로 홈쇼핑 등에서 판매해 유통심의위원회의 정가제 위반 심사대상에 올랐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단행본의 경우 할인율을 15%로 제한하지만 세트도서의 경우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출판사들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제도 시행취지에 반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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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개정도서정가제 시행 첫날인 지난해 11월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동네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뉴시스> |
제도시행에 따른 부작용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갈수록 독서인구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할인 규제만을 앞세워 출판시장을 바로잡겠다는 도서정가제 시행 취지가 무색해지는 근본적 이유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1만8154원이다. 4년 연속 감소한 것이며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뒤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책값이 2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사실상 가구당 책을 한권도 사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시행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2013년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2권으로, 2011년보다 0.7권 줄었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첫해인 올해 도서구입비는 더욱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독서인구도 갈수록 줄어드는 데다 그나마 책값이 비싸다고 느끼는 구매자들마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거나 중고책을 사보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자리잡았다고 홍보하지만 출판계 분위기는 정반대”라며 “대다수 출판사들은 여전히 불황의 늪에 빠져 있고, 독자들은 가격은 내리지도 않고 할인제도만 없앴다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