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김재수 내츄럴엔도텍 대표 |
‘내츄럴(Natural)+엔도크린(Endocrin:호르몬)+기술(Technology).’
김재수 대표가 내츄럴엔도텍으로 회사 이름을 정한 이유다. 김 대표는 천연원료를 이용해 인류건강에 도움이 되는 물질을 개발하려는 꿈을 안고 창업에 나섰다.
김 대표는 2001년 5월 자본금 5300만원으로 회사를 세웠다. 그 뒤 연구개발에 매진한 끝에 창업 7년 만인 2008년 한약재를 혼합한 복합추출물 에스트로지를 개발해 갱년기 장애 개선제 시장에 내놓았다.
김 대표는 2010년 2월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의 미국인 대상 임상시험을 마쳤고 두 달 뒤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갱년기 여성 건강소재로 국내 최초 승인을 받았다.
내츄럴엔도텍의 경영실적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내츄럴엔도텍은 2012년 매출이 216억 원 가량이었는데 지난해 1240억 원으로 올라섰다. 백수오 제품이 선풍적 인기를 끈 덕분이다.
김 대표는 해외시장에 진출해 한약재를 이용한 국산 건강제품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릴 알릴 꿈을 꾸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김 대표의 10년 공든 탑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1조 원을 넘었던 회사 주식가치도 바닥 모르게 떨어지고 있다.
내츄럴엔도텍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1주일 전만해도 잘 나가는 바이오벤처 사업가였던 김 대표는 ‘사기꾼’으로까지 내몰리는 상황을 맞고 있다.
◆ 자신만만했던 김재수, 정말 몰랐을까?
김 대표는 ‘가짜 백수오’ 논란이 불거진 다음날인 지난 23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 같으면 온갖 고생으로 키운 한국 백수오산업을 죽일 것이 뻔한 가짜를 쓰겠는가. 백수오 추출물은 천연 신약소재로 발전 가능성이 풍부하다고 판단해 매년 10억 원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가짜 백수오인 이엽우피소를 사용하겠는가.”
김 대표는 흔들림없이 결백을 주장하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내츄럴엔도텍이 국내 제약 바이오 1200개 회사 중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주식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았는데 얼마 전부터 전체 발행주식 1천만 주 가운데 200만주가 공매도에 이용되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번 사태도 공매도세력의 음모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김 대표는 식약처 재조사 결과가 나오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파문을 진화하기 위해 백수오 생산 전 과정을 공개하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정말 몰랐던 것일까? 단순히 생산과 제조과정의 문제였을까?
김 대표가 알고도 속였든, 아니면 정말 몰랐든 결과는 변함이 없다. 김 대표는 한국소비자원과 진실게임에서 완패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소비자원의 손을 들어주면서 내츄럴엔도텍의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땅에 떨어졌다.
식약처는 30일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제품을 재조사한 결과 백수오 원료에서 이엽우피소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김 대표는 줄곧 철저한 자체검사 과정에서 백수오 외에 다른 물질이 섞일 가능성은 '제로'라고 주장했으나 결국 거짓말을 한 꼴이 됐다.
식약처는 “백수오등 복합추출물'을 제조공급한 내츄럴엔도텍에 보관되어 있는 백수오 원료에서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이번에 재조사한 원료는 지난 3월 26일과 27일에 입고된 백수오 원료”이며 “해당 백수오 원료는 한국소비자원이 검사한 백수오 원료의 입고날짜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
|
▲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가 30일 백수오 유전자 추출 전처리과정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
◆ '가짜 백수오'보다 더 무서운 신뢰추락
백수오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년층 여성의 갱년기 장애를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는 한약재로 식약처의 인정까지 받았다.
이엽우피소는 백수오와 겉모양은 비슷하다. 재배기간이 2~3년인 백수오에 비해 1년 정도로 짧고 그만큼 비용이 적게 든다. 하지만 독성과 신경쇠약 등 부작용을 유발해 식약처가 식품원료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물질이다.
내츄럴엔도텍은 천연 한약재인 백수오를 이용한 제품으로 말 그대로 ‘대박’을 냈다. 내츄럴엔도텍은 지난해 백수오 관련 매출로 1240억 원을 벌어들였다.
특히 홈쇼핑을 통한 판매비중이 높았다. 지난해 홈쇼핑에서만 매출의 75%인 940억 원 어치를 팔았다. 4월 한 달 동안 홈쇼핑에서 올린 매출만 10억 원 안팎이다.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제품이 ‘가짜 백수오’라는 오명을 쓰긴 했지만 사실 가짜인 것만은 아니다.
식약처 재조사 결과도 이엽우피소가 함유됐다는 뜻이지 백수오 원료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또 이엽우피소 성분이 일부 들어있다고 해서 당장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내츄럴엔도텍은 주식 불공정거래 의혹도 받고 있다. 임원들이 논란을 전후해 보유지분을 팔아 수십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김철환 영업본부장은 3월26일부터 4월1일까지 1만 주를 팔아 7억 원 가량의 차익을 냈다. 이권택 권순창 연구소장과 김태천 생산본부장도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보유주식 2만5500주를 팔아 약 22억 원 규모의 차익을 챙겼다.
내츄럴엔도텍은 임원들이 회사복지를 위해 지분을 매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매각시점만 보면 의혹을 낳기 충분하다.
소비자원이 조사를 앞두고 원료를 수거해 간 날짜는 3월26일이었다. 소비자원은 4월8일 실험결과에 대한 소명을 듣기 위해 내츄럴엔도텍과 간담회를 열었다.
임원들이 미리 소비자원 발표 내용을 알았을 경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 식약처가 소비자원과 동일한 결론을 내놓은 만큼 소비자원 발표 내용이 미공개 정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는 내츄럴엔도텍의 미공개정보 이용을 대해 조사하고 있다. 미공개정보 이용이 맞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자본시장조사단이 수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
|
|
▲ 백수오와 이엽우피소 비교<한국소비자원> |
◆ 내츄럴엔도텍, 존폐의 기로에 서다
내츄럴엔도텍은 식약처 조사 결과에 30일 공식 입장자료를 내 “공인기관의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며 “백수오 생약 원료에 대해서는 입고 전 및 입고 후, 제품 생산 전 철저히 검사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 왔지만 이번 식약처 조사에서 해당 로트에 ‘이엽우피소’ 혼입이 확인됐다”고 인정했다.
내츄럴엔도텍은 이어 “그간 원료의 재배, 수매 등 관리에서 만전을 기하고 있었지만 비의도적으로 혼입된 원료로 인한 검출된 결과에 대해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전했다.
식약처 발표로 ‘가짜 백수오’ 사태는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츄럴엔도텍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식약처는 이엽우피소를 이용해 제조한 업체들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품목제조정지 2개월, 일반식품의 경우 품목제조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내츄럴엔도텍은 2개월 행정처분 조치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내츄럴엔도텍은 검찰수사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원이 내츄럴엔도텍을 검찰에 고발해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수사를 통해 이엽우피소 혼입과정에 내츄럴엔도텍의 고의성이 있었는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고의성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사법처리받을 수도 있다.
내츄럴엔도텍이 당장 사업면허를 박탈당할 가능성은 낮지만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바로 상장폐지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회사 신뢰성이 타격을 입어 재기 가능성이 없을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에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가짜를 진짜로 속여 팔았다면 투자자와 소비자를 우롱한 중대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홈쇼핑에서 제품을 팔아 성장한 회사인데 반품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면 사실상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