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유·철강 기업들이 한국에 경제보복을 취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목소리에 긴장하며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최근 판결을 빌미로 일본의 고위관료가 관세 부과 등 구체적 보복조치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25일 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가 관세 부과, 소재 공급 중단 등 경제보복을 실행하면 일본시장 매출 비중이 높은 정유·철강업계에서 주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일본은 2018년에 한국의 석유제품을 3번째로 많이 사간 나라로 조사됐다. 전체 석유제품 수출량 가운데 일본 수출 비중은 11%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 제품은 대체로 장기계약을 맺어 거래하기 때문에 단기적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관세가 부과되면 매출과 수익이 줄어드는 등 장기적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포스코 등 철강기업들도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의 매출 가운데 수출이 43%인데 일본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라며 “특히 포스코의 자회사 포스코켐택은 일본에서 석회석과 인조흑연 등의 원료를 수입해 내화물을 생산한다”고 말했다.
반도체산업도 일본의 경제보복에 피해가 우려된다. 일본은 반도체 생산에서 핵심소재 가운데 하나인 불화수소를 독점적으로 생산한다. 일본이 불화수소 공급을 제한하면 한국 반도체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밖에 여행업종도 일본의 비자발급 정지 가능성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2018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4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일본이 경제보복 조치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이 한국에서 거둔 무역흑자 규모가 2018년 기준 240억 달러에 이르러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서는 순간 일본 기업의 피해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내부적으로 일본의 경제보복 가능성에 맞대응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한국을 향한 경제보복 현실화 가능성은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최근 경제 보복조치를 언급하면서 떠올랐다. 과거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에서 경제보복이 거론된 적이 있지만 최고위관료가 경제보복 조치를 직접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소 부총리는 12일 일본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해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문제 삼으며 “관세 부과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제한, 비자 발급 정지 등 여러 보복조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복조치 전에 협상 등의 대응을 하겠지만 일본 기업에 실제 피해가 생기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접적 경제보복 외에 일본이 한국의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거부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협정은 참가국 가운데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신규 가입을 할 수 없다.
일본언론 산케이는 22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이 CPTPP 가입을 요청하면 일본 정부가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