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조만간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차례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정기주총 의안과 관련한 투표방향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정기 주주총회가 다가온 만큼 의결권 자문사들은 이미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방침을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의결권 자문사들은 주주총회에서 논의되는 안건을 분석해 기관 투자자에게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의결권 자문사에게 주총 안건 분석을 의뢰한 기관투자자 가운데 75%가량이 이들의 판단에 따라 주총 안건에 찬반 투표를 진행하는 만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로서는 의결권 자문사들의 투표 권고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기준 각각 3천 원, 4천 원을 현금배당하는 안건을 정기주총 의안으로 올렸다. 하지만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주주제안을 통해 각 회사에 각각 2만1967원, 2만6399원씩 배당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사외이사 선임을 두고도 표대결을 벌인다.
현대차그룹이 2018년 상반기에 추진하려고 했던 지배구조 개편안이 이들의 잇따른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기 때문에 이번 의견 표명이 더욱 중요해졌다.
글로벌 2위 의결권자문사 글래스루이스가 최근 현대차 이사회의 결정에 찬성하는 쪽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을 권고해 현대차그룹이 지난해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글래스루이스는 “대규모 일회성 배당금을 지급해 달라는 제안에 지지를 권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며 “현대차가 경쟁력과 장기적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상당한 연구개발과 잠재적 인수합병 비용이 필요하다”고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주제안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글래스루이스가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과도한 배당 요구를 문제삼으면서 ISS와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대신경제연구소,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등도 현대차그룹에 유리한 쪽으로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외국계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ISS의 판단이 가장 주목받는다.
ISS는 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에서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1위다. 미국계 펀드와 연기금, 보험사를 포함해 세계 2천 개 안팎의 기관투자자들은 ISS에 자문료를 내고 서비스를 받고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율이 8일 기준으로 각각 44.51%, 46.38%라는 점을 감안할 때 ISS의 의견이 주총에서 현대차그룹의 유불리를 결정짓는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ISS가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구체적 판단근거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부 방침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가늠하기는 힘들다. 다만 홈페이지에 공개된 ‘투표 원칙(Voting Principles)’을 통해 볼 때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유리한 쪽으로 의결권 행사 권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ISS는 각 기업 이사회의 △책임성(Accountability) △스튜어드십(Stewardship) △독립성(Independence) △투명성(Transparency) 등 4가지 대원칙을 기준으로 투표 행사를 권고하고 있다.
ISS는 “이러한 원칙은 기관투자자로 하여금 책임있는 글로벌 기업 지배구조 관행을 지원함으로써 장기적 주주가치 창출과 위험 완화를 촉진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최근 중장기 투자계획과 주주 환원정책을 발표하고 금융과 투자, 거버넌스(경영체제) 전문가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이사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계획을 내놓은 점에 비춰보면 ISS가 현대차그룹의 결정에 우호적 판단을 내릴 명분은 충분히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다만 ISS가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의결권 행사를 권고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란 시각도 있다.
ISS의 모회사가 ‘젠스타캐피털’이라는 사모펀드인 만큼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같은 헤지펀드에 유리한 쪽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경제연구소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신경제연구소는 현재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침을 정했지만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대신경제연구소가 기아차 주총 의안과 관련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이사회의 결정에 찬성하는 쪽으로 권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신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주 안에 의뢰인들에게 우선 의결권 행사를 권고한 뒤 다음주에 대외적으로 완전 공개할 것”이라며 “의뢰인과 비밀유지 계약 때문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주주제안에 어떤 의견을 정했는지 현재로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현재 현대차, 현대모비스 주총 의안의 검토를 끝낸 상태지만 비밀유지 계약으로 권고 의견이 알려지기까지 수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이 우호적 의견을 내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주총 표대결에서 한층 여유를 얻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통해 찬반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최근 들어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8년 3분기 말 기준으로 현대차 지분 8.7%, 현대모비스 지분 9.45%를 들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