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벤처투자 전문 자회사인 하나벤처스에 힘을 실어 벤처투자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별도의 계열사와 전문인력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 행보로 풀이된다.
20일 하나벤처스 관계자에 따르면 하나벤처스는 2월 말 KDB산업은행이 진행하는 성장지원펀드에 지원한다. 이를 기반으로 상반기까지 최대 1천억 원 규모의 펀드를 구성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지금까지 하나금융그룹 계열사인 하나금융투자, KEB하나은행, 하나캐피탈 등에서 600억 원을 지원받은 데 이어 추가적으로 외부 자금을 유치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회장은 지난해 설립한 벤처투자 자회사를 중심에 두고 전문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 회장은 하나벤처스를 출범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신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에게 달려 있다"며 "하나금융은 혁신 적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하나벤처스를 통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벤처스는 하나금융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펀드 자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펀드 운용의 결정권은 전적으로 하나벤처스가 보유하게 된다.
실제로 하나캐피탈은 지난해 벤처투자를 시작하기 위해 신기술금융업을 신청했지만 최근 이를 반납했다. 이에 따라 하나캐피탈과 공동으로 조성하는 벤처투자 펀드 역시 하나벤처스가 단독운용을 맡게 된다.
하나캐피탈 관계자는 “하나금융그룹이 하나벤처스의 공식 출범을 계기로 (하나벤처스에) 그룹 내 신기술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하나캐피탈은 그룹 공동 차원의 벤처 투자활동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벤처스는 증권사나 은행이 직접 투자하기 어려운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도 투자할 계획을 세워뒀다.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이사 사장은 "증권사들이 보통 바이오 분야에 국한되거나 후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하는 데 비해 하나벤처스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도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하고 이를 바탕으로 후속 투자에도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그룹이 다른 금융지주들과 달리 전문 자회사를 앞세워 벤처투자사업을 강화하는 데는 김 회장의 뜻이 반영됐다.
계의 한 관계자는 “보수적 금융그룹의 기조를 감안할 때 모험자본인 벤처투자에 직접 뛰어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
김정태 회장이 벤처투자 영역은 하나벤처스에 맡기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도 각각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계열사를 통해 벤처투자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하나금융지주처럼 전문 자회사를 두고 있지는 않다.
KB금융지주가 벤처투자 자회사인 KB인베스트먼트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금융그룹은 외부 벤처투자 전문가를 영입해 대표이사로 앉히며 권한을 줬다는 점에서 차별적 행보로 해석된다.
김동환 사장은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에서 근무한 전문 벤처캐피탈리스트이고 하나벤처스의 다른 심사역들도 모두 전문 벤처투자 전문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은행과 증권사 등 전통적 금융회사들이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벤처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동안 해왔던 투자의 성격이 달라 공격적으로 벤처투자를 벌이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은행은 일반 고객층의 예·적금을 기반으로 투자활동을 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려야 할 필요성이 크고 증권사 역시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만큼 5년 이상의 운영기간이 필요한 벤처펀드와 성향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벤처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도 일정 규모의 펀드를 구성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대부분 전통 투자금융(IB) 출신의 인력이 운영하고 있어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