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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
오너가 경영 일선에서 일보 후퇴하고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최신원 SKC 회장, 장형진 영풍 회장 등이 최근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오너 대신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이끌어 경영에 전문성과 투명성을 더한다는 점에서 전문경영인체제 전환은 반길만한 일이다.
그러나 오너가 경영에 그대로 참여하면서 연봉공개도 피하고 경영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지는 일을 피하기 위해 전문경영인을 얼굴로 내세우는 것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또 경영승계를 위한 과도기에서 임시로 나타나는 전문경영인체제도 적지 않다.
◆ 서정진 최신원,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속사정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최근 셀트리온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서 회장은 김형기 사장과 기우성 사장을 공동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서 회장은 “전문경영인을 대표이사로 전진배치하겠다”며 “각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을 대표이사에 선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은 이전부터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성을 쌓는 사람과 지키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는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제약과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이사에서도 물러나 김만훈 사장과 홍승서 사장을 각각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를 제외하고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았다.
셀트리온 전문경영인체제 전환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재훈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셀트리온이 전문경영인체제로 사업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시스템을 안정화할 것”이라며 “셀트리온헬스케어까지 상장하면 기업 투명성 측면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셀트리온의 사업이 서 회장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 전문경영인과 역할분담 차원에서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서 회장이 셀트리온 주가조작사건 등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부담을 느껴 대표이사 자리를 전문경영인에게 넘기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신원 SKC 회장도 최근 매제인 박장석 SKC 부회장과 함께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최 회장은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최태원 SK그룹의 사촌형이다.
최 회장은 SKC를 비롯해 SK텔레시스, SK솔믹스, SK코오롱PI 등을 맡아 SK그룹에서 사실상 독립경영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대표이사 임기 종료와 함께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최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데 대해서 여러 말이 나온다.
SKC는 최 회장이 경기도 상공회의소 연합회장에 추대되는 등 대외활동에 전념할 계획으로 대표이사를 그만뒀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경기상의 연합회장 외에 아너소사이어티 회장,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 회장, 수원상의 회장, 상표디자인협회장,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태평양포럼 이사 등 10여 단체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 회장이 SK텔레티시스 사업부진을 놓고 매제인 박창석 부회장과 갈등을 빚다가 동반퇴진이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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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원 SKC 회장 |
◆ 경영승계 과도기의 전문경영인 체제
롯데그룹도 전문경영인체제가 확대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롯데 주요계열사 임원에서 모두 물러나면서 전문경영인체제로 바뀌는 회사가 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당분간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이 경영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은 이달 들어 한국롯데 주요 계열사 등기이사에서도 연달아 하차했다. 신 전 부회장은 23일 롯데건설에 이어 25일 롯데리아 등기이사에서도 퇴임했다. 롯데그룹은 “전문경영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과 경영승계 다툼에서 밀려났고 전문경영인체제는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을 완벽히 장악하기 전의 과도기적 체제로 해석된다.
이밖에 장형진 영풍 회장도 20일 임기만료로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았다. 영풍은 장 회장 대신 전문경영인인 김명수 부사장과 강영철 전무가 경영을 이어간다.
장 회장은 올해로 70세인데 조만간 장남인 장세준 영풍전자 부사장이 경영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 과도기적으로 전문경영인체제를 갖춰다는 분석이 나온다.
◆ 연봉공개 회피, 전문경영인 뒤에 숨는 오너
오너들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 것은 등기임원의 연봉공개를 피하기 위한 경우도 많다.
지난해부터 연봉 5억 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의 경우 보수를 공개해야 하는 의무가 생겨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오너들도 적지 않다.
오너들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도 회사에서 강한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등이 2013년 연봉공개를 앞두고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것 역시 연봉공개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그룹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등기이사가 아니다. 이부진 사장만 유일하게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해 첫 등기임원 연봉공개 때 기업상황과 무관하게 고액연봉을 받는 오너들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3년 옥중에 있으면서도 300억 원의 보수를 받아 질타를 받았다. 그러자 최 회장은 연봉 전액을 사회환원하겠다고 뒤늦게 선언했다.
재계 관계자는 “연봉공개에 대한 오너 일가의 부담은 상당히 크다”며 “어차피 사내이사가 아니더라도 오너는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내이사 자리는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