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8-09-27 14: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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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후 미국 뉴욕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차 관세 인상을 놓고 대통령 선거에서 그에게 지지를 보냈던 미국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에 화답해 한국산 자동차에 관세 부과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지만 중간 선거 승리에 목마른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이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27일 자동차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입차 관세 인상 방침이 미국에서 11월6일 치러지는 중간선거(상·하원의원 선거) 이전에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상·하원의원 선거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나 전국 동시 지방선거처럼 미국의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의 성적을 평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썬 정치적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공화당의 승리로 이끌기 위해 수입차 관세 인상 카드를 선거 직전에 꺼내들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된다.
미국 상무부는 현재 수입차와 자동차부품에 무역확장법 232조(미국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제품과 관련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고 최대 25%의 관세를 물릴 수 있도록 한 법)를 적용할지를 놓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담보하기 위해 수입차 관세 인상 방침을 내놓기를 원하고 있다.
상무부가 밝힌 조사 기간은 2019년 2월16일까지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전에 그 결과를 보고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탈출과 중간선거 승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 위해 수입차 관세 인상 카드를 적극 활용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성추행 스캔들 등으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 CNN과 공영라디오 NPR 등이 최근 조사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각각 37%, 38%를 보였는데 이 추세대로라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려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극적 지지를 보냈던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려세울 필요가 있다.
러스트벨트는 미국 중서부 지역과 북동부 지역의 일부 영역을 일컫는 말로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었던 디트로이트를 비롯해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던 피츠버그 등을 포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때 보호무역주의를 시행해 이 지역의 경제를 다시 부흥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아 민주당의 텃밭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었다.
미국 상무부의 조사 기간 만료 이전에 수입차 관세 인상을 확정한다면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의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폴리티코는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자동차시장에서 경쟁하는 나라의 기업들에 관세를 부과하면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며 “수입차 관세 부과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과 관련한 일련의 움직임들 가운데 가장 공격적 정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미국 '러스트벨트' 지역을 나타낸 지도. 빨갛게 표시된 곳이 전통적 러스트벨트 지역이다.
한국 자동차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한국산 자동차에 미국 정부가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산 자동차의 수출가격은 현재보다 9.9~12%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미국에서 파는 가격보다 최소 10%가량을 더 비싸게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은 미국에서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등을 공격적으로 투입하고 있는데 관세 인상이 확정되면 신차 투입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산자동차에 25%의 관세가 부과되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각각 1조4700억 원과 1조1100억 원의 피해를 보게 된다. 르노삼성자동차차와 한국GM 등도 1천억 원이 넘는 손해를 보게 된다.
한국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자동차 관세 인상에 한국에 호혜적 조치를 해달라고 미국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18~19일 미국에서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과 조니 아이잭슨 조지아주 상원의원,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연달아 만나 수입차 관세 부과 움직임과 관련한 국내 자동차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한국산 차량에는 관세를 높이지 말아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도 한미 정상회담 기간인 24일 한미 자유무역협정(한미FTA) 개정협정 공식 서명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의 대미 수출 자동차 관세를 면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배석자에게 “문 대통령의 의견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