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지 말지를 아는 자가 승리한다.' 손자병법의 조언이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과 노조는 모두 싸움을 골랐다. 임단협에서 연일 파행을 거듭하며 서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누가 먼저 물러설 지 갈수록 안갯속이다.
▲ 강환구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박근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 |
22일 업계에 따르면 강 사장은 노조와 협상에서 '보이콧'까지 감수하며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1일 25차 임금 및 단체협상까지 벌써 4차례째 회사 측의 거부로 교섭이 진행되지 못했다.
회사는 노조가 교섭과정에서 막말하는 등 선을 넘어 이대로는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노조 관계자는 “막말이 아니라 교섭위원에게 ‘당신’이라고 한 것일 뿐”이라며 “교섭장에서 일어난 일은 현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고 계속 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법적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 정도가 아니라 노조 측이 욕설이 한 것이 맞다”며 “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해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쟁점은 해양플랜트의 유휴인력 문제와 임금 인상 여부다.
회사 측은 3분기째 영업손실을 보는 등 경영상황이 어려운 만큼 해양플랜트사업부에 소속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노조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추가 파업 역시 검토하고 있으나 강 사장은 물러서려는 기미가 없다. 4월에 이어 하반기에도 추가적 희망퇴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을 정도로 이번에 고정비를 줄이겠다는 뜻이 굳건해 보인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회사 측은 무급휴직이라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고 이를 받아들일지 파업을 할지 여부는 노조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7월 4차례의 전면파업을 했다.이 기간 발생한 매출 손실은 하루 평균 83억 원이다. 만약 공정에 차질이 생겨 인도일을 맞추지 못하면 하루가 밀릴 때마다 지체보상금도 쌓인다.
하지만 강 사장은 지금 인건비를 줄어지 않으면 앞으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증권사들은 현대중공업이 해양부문 인력을 대상으로 유급휴직을 하게 되면 한해 1628억 원 수준의 고정비 부담을 안게 된다고 추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자본 규모에 비춰보면 크지 않은 수준이지만 중국 등의 경쟁회사들이 싼 인건비로 일감을 뺏어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하기 힘든 부담이다.
회사 측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내소식지 ‘인사저널’이 21일 “조선업은 불황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며 “강력한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고 호소한 점에서도 강 사장의 뜻이 짐작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22일 지주사체제 전환을 사실상 마무리하는 등 정기선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시동을 걸린 만큼 강 사장이 회사 체질을 바꾸는 일을 서두르고 있다는 시선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