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돌아올 길은 열어뒀다. 그에게는 아직 못 다 이룬 정치의 꿈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저는 오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안철수 전 의원은 12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6년 가까운 정치생활을 접고 휴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6.13 지방선거 패배와 함께 “진로를 고민하겠다”고 한 뒤 공개적으로 거취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 전 의원은 그동안 정치인생을 돌아보며 그가 내세웠던 ‘새 정치’를 평가했다.
그는 “5년 9개월 정치를 하면서 다당제 시대를 열었고 개혁을 위해 힘을 다해왔지만 미흡한 점도 많았다”며 “제가 부족해 기득권 양당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안 전 의원은 독일로 떠날 뜻을 내놨다.
그는 “대한민국이 당면한 시대적 문제를 앞서 해결하고 있는 독일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자 한다”고 밝혔다.
안 전 의원은 “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더 깊이 경험하고 더 큰 깨달음을 얻겠다”며 “각국이 직면한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가 앞으로 나갈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숙고하겠다”고 말했다.
완전한 정계은퇴를 놓고는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안 전 의원은 최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내놓은 “국민이 부르지 않으면 돌아오지 못한다”던 발언을 두고 “사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모든 정치인들에게 적용되는 일반론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계복귀 시기를 가늠하려는 질문에는 “지금 저는 어떤 생각도 없으며 돌아올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며 “독일부터 시작해서 어려움을 극복한 나라들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목적 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안철수 전 의원은 불과 6년 남짓의 짧은 시간에 3번의 창당, 2번의 당 대표와 1번의 대선 후보를 거치며 격동의 정치여정을 밟았다. 서울시장 후보 양보와 대선후보 단일화도 경험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과 함께 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학계에서 빠르게 인정받아 1990년 불과 27세 나이로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학장에 올랐다.
1995년 3월15일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하고 컴퓨터 백신 V3 등을 개발해 '컴퓨터 바이러스를 고치는 의사'로도 성공했다.
V3 무료배포로 깨끗한 사업가 이미지를 구축했고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씨, 법륜 스님과 함께 '청춘 콘서트'라는 강연을 열며 청년들의 멘토로 많은 인기를 누렸고 이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저에 대한 기대는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박원순 변호사는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훌륭한 분"이라며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해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안 전 의원은 2013년 4월24일 노원병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 무렵 그를 향한 대중의 열망을 두고 도올 김용옥 한신대학교 석좌교수는 "국민의 신뢰감에는 근거가 있다"며 "컴퓨터 백신이라는 뚜렷한 공익사업을 창출한 컴퓨터 의사가 '국가 의사'로 올라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 전 의원은 국민의당을 세워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8석을 얻어내며 양당제가 고착화되던 국회에 영향력 있는 제3당을 만들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기득권 양당'이라며 개혁 대상으로 보았다. 국민의당으로 양당을 견제하며 국민을 위한 제3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포부를 내놨다.
그러나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21.4% 득표율을 얻어 3등으로 낙선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