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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5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산분리의 빗장을 열게 될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등 더 가볍고 빠른 플레이어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업권 사이의 칸막이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예금 수신과 이체에서 대출까지 모든 은행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은행이다. 영업점이 없거나 콜센터 등 최소한만 있기 때문에 소비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24시간 365일 연중무휴로 동일한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
소비자가 보기에 인터넷전문은행은 기능적인 면에서 기존 인터넷뱅킹과 큰 차이가 없다.
단 인터넷전문은행은 대신 영업점 유지관리에 쓰이던 비용을 대출금리 인하나 수수료 감면 등으로 돌릴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운영하는 IT기업 등과 연계해 오프라인 은행보다 훨씬 다양한 제휴서비스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은 현재 중국의 IT업계 양대 기업인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세계 금융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금융당국자들도 불황에 빠진 국내 금융시장의 성장해법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이 활성화하려면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해야 한다.현재 법규에 따르면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등의 IT기업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 회사들조차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논의하고 있다.
◆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산분리 빗장을 풀까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중장기적 과제로 제시하면서 금산분리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지난해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산업자본의 은행개입 허용과 그에 따른 소유제한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인터넷전문은행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산업자본이 은행지분을 전체의 4%만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분 자체는 10%까지 보유할 수 있으나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4%를 초과한 지분은 의결권도 제한받는다.
금산분리는 기업이 은행을 계열사로 둘 경우 고객의 예금을 제멋대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안한 것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산업자본의 보유 지분 규제가 9%로 완화했다가 부실저축은행과 동양증권 사태 등 금융사고가 터진 뒤 다시 4%로 돌아왔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중국의 경우 전자상거래기업인 알리바바나 텐센트도 은행산업에 진출했다”며 “우리나라도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이런 추세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대규모 기업대출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2금융권과 IT기업이 금산분리 규제에서 예외대상이 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오는 15일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이런 금산분리 완화책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여신업무를 소액대출로 한정해 금산분리 완화의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개인고객 대출한도를 최대 3천만 원으로 제한하고 소규모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에게 최대 20억 원까지 대출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네이버나 다음카카오보다 규모가 작은 IT기업부터 먼저 인터넷전문은행 시장에 진입하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막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중장기적으로 대형 IT기업이나 제2금융권 회사도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신 위원장은 지난해 송년사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은 금산분리가 큰 이슈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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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5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 “금산분리 함부로 완화하면 안 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산분리 규제에서 예외가 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도 강하다.
정부는 2013년 동양 사태가 터지자 산업자본이 금융계열사를 운용하면서 고객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산분리 규제를 강화했다. 그뒤 아직 1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이유로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할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금산분리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때문에 금산분리 원칙을 건드릴 경우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찬성하는 쪽도 금융위가 현재 추진하는 형태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국내 개인고객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며 소액대출이 주력사업인 저축은행 등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영업점이 없기 때문에 초기 광고비가 기존 은행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며 “소매금융에만 치중할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의 장점이 많이 퇴색돼 시장이 커지는 데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 인터넷전문은행 앞에 놓인 또다른 규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금산분리 규제 외에도 다른 여러 규정과 충돌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금융실명제와 최소자본금 규정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영업점이 없거나 최소화하기 때문에 금융실명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설립되기 힘들다. 정부는 1993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서 고객이 첫 은행거래를 할 때 영업점 직원과 직접 대면해 실명을 확인해야 한다고 지정했다.
현행법상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폰뱅킹만 하는 고객도 처음에 영업점을 찾아가 실명확인을 해야 한다. 금융위가 2008년 인터넷전문은행을 저축은행과 연계해 도입하려 했을 때도 이 규정 때문에 시도가 무산됐다.
인터넷전문은행을 하려는 사업자는 전국 영업을 할 경우 최소 1천억 원의 자본금을 갖춰야 하는 부담도 진다. 현재 은행법에서 은행허가를 받으려면 전국은행 1천억 원, 지방은행 250억 원의 최소자본금을 갖춰야 한다.
금융당국은 최근 개정된 금융실명거래법 시행령을 통해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실명제를 우회해 실명을 확인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금융회사가 다른 회사에 실명확인 업무를 맡길 수 있다고 규정했다.
기존 금융회사가 인터넷전문은행을 만들 경우 은행고객은 모회사에서 실명확인을 받게 된다. 시중은행에 최근 시행중인 다이렉트뱅킹과 같이 인터넷전문은행 직원이 고객을 찾아가 실명확인을 하는 방법도 논의된다.
금융위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다른 금융회사의 공인인증서, 전화통화, 홍채인식, 화상대면 등을 이용해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고 실명을 확인하는 방안을 허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고객 직접대면이 필수라고 지정한 금융실명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
최소자본금 규정의 경우 전국 은행 기준을 500억 원으로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신 위원장은 지난달 전자금융회사의 자본금 기준을 현행 10억 원에서 더 낮추거나 탄력적으로 적용하려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전문은행도 유사한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법이나 금융실명거래법을 개정해야 할 경우 국회에서 개정안을 논의하는 데 1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법을 우회할 수 있는 방안부터 시행하고 개정을 장기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모든 업무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져 보안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부담도 안고 있다. 지난해 초 카드사 고객정보 대량유출 사태가 터지면서 금융회사의 보안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금융위는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시중은행보다 더욱 강력한 보안체계를 의무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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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제윤 금융위원장 <뉴시스> |
◆ 신제윤은 왜 인터넷전문은행을 꺼내들었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2001년과 2008년 추진됐으나 법 문제와 업계의 미온적 반응 때문에 무산됐다.
그러다 신 위원장이 지난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히면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은 신 위원장이 2013년까지 추진하던 금산분리 강화와 반대편에 서 있는 의제다. 신 위원장은 2013년 3월 취임한 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금산분리 강화에 매진했다. 지난해 2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보유 제한이 9%에서 4%로 강화됐다.
그러나 신 위원장은 지난해 중순부터 금산분리 완화로 기조를 틀었다. 금융위는 지난해 6월 금융회사의 해외영업점에 대해 해외법을 국내법보다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기업이 해외에 은행을 설립하거나 은행이 증권업무를 같이 수행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신 위원장은 당시 국내에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로 다음달인 지난해 7월20일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인터넷전문은행 등에 대해 기존은행보다 완화한 진입요건과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지난해 7월24일 금융규제 개선과제 가운데 하나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검토를 제시했다. 신 위원장은 당시 외국사례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 인가의 적격성과 제도개선 등을 중장기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그뒤 금융위는 꾸준히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검토하는 이유로 IT와 금융의 융합산업인 ‘핀테크’ 강화를 들었다. 그는 국내 금융시장도 세계적으로 핀테크가 확산되는 흐름에 대응해야 한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을 IT기술과 금융거래의 대표적 융합사례로 들었다.
일부 금융권 관계자들은 신 위원장이 국내 금융시장 인수합병의 장애물인 금산분리를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제시했다고 본다. 신 위원장은 지난 2일 증권파생시장 개장식에서 “올해에도 인수합병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최대 이슈였던 우리은행 민영화는 유력후보였던 교보생명이 참여를 포기하면서 실패했다. 교보생명은 당시 자금압박 외에도 금산분리 규제 때문에 인수를 승인받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KDB산업은행도 민영화를 포기하고 올해부터 정책금융기관인 통합 산업은행으로 출범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산업자본은 금산분리 규정 때문에 금융회사를 인수하기 어렵고 금융전문회사는 자본력이 달려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며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인수합병의 경우 금산분리가 엄격한 상태에서 지금보다 더 활성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