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한복 디자이너인 이영희씨가 별세했다.
이씨는 노환으로 폐렴이 악화되면서 17일 오전 0시40분경 숨을 거뒀다. 향년 82세.
평생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1976년 나이 마흔에 뒤늦게 패션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정식으로 의상 디자인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아이 학비를 보태기 위해 이불 장사를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이씨는 이불의 홑청을 염색해 자투리 천으로 한복을 만들다가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이영희 한국의상’이라는 이름으로 한복 가게를 열었다.
1980년 한국의상협회 창립을 기념하는 한복 패션쇼에 참가하면서 패션쇼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1993년에는 국내 디자이너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패션쇼에 참가해 한복을 선보였고 2000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윈드 오브 히스토리' 패션쇼, 2001년 북한 평양에서 한복 패션쇼를 열었다.
2004년 뉴욕 맨해튼에 이영희한복박물관을 개장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한복 12벌을 영구 전시하면서 2008년 구글이 선정한 '세계 아티스트 6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2010년 한복 디자이너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 패션쇼를 여는 등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한복의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2010년 서울시가 주최하는 서울 패션위크에서 '헌정 디자이너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21개국의 정상들이 2005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입은 두루마기도 이씨의 작품이다.
이씨는 2015년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40년 동안 만들어온 한복이지만 아직도 날마다 한복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접하면서 가슴이 뛴다”며 “그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나라에 알리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배우 전지현씨의 시할머니로도 잘 알려졌다. 전지현씨는 2012년 이씨의 외손자와 결혼했다.
이씨의 유족으로는 3남매가 있다. 패션 디자이너인 딸 이정우씨, 미국 변호사인 아들 이선우씨, 청담컨텐츠 이사인 아들 이용우씨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