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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Who] 박삼구가 시작해 이동걸이 끝낸 금호타이어 매각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8-04-02 18: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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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Who] <a href='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112189' class='human_link' style='text-decoration:underline' target='_blank'>박삼구</a>가 시작해 이동걸이 끝낸 금호타이어 매각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부터),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김종호 금호타이어 회장, 조삼수 금호타이어 노조 대표지회장, 윤장현 광주시장 등이 3월30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경영정상화 추진을 위한 노사정·채권단 긴급 간담회' 결과 금호타이어 노사가 해외매각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금호타이어가 우여곡절의 스키드마크를 찍고 해외 매각 유턴으로 마무리됐다. 수많은 인물들이 금호타이어 스키드마크에 희비의 얼굴을 찍었다.  

오너였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의 이동걸 전 회장과 동명이인인 이동걸 현 회장 등이 이번 사태의 전면에 섰다가 물러났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타이어 사태의 서막을 열어젖힌 사람으로 꼽힌다.  

박 회장은 2000년대 중반에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과 대우건설 인수를 주도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순위 8위까지 올려놓았지만 이때 무리했던 여파로 그룹 전체가 흔들리게 됐다.

이때 금호타이어도 대우건설 인수자금의 상당 부분을 부담했던 탓에 경영 악화를 피할 수 없었다. 박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해외공장 증설도 재무 부실에 한몫 했다. 
 
[오늘Who] <a href='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112189' class='human_link' style='text-decoration:underline' target='_blank'>박삼구</a>가 시작해 이동걸이 끝낸 금호타이어 매각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금호타이어는 결국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14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하기까지 5년 동안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되찾으려고 애썼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건해 ‘제2의 창업’을 이루려면 핵심 계열사인 금호타이어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졸업 이후에도 중국 공장의 부실을 털어내는 데에 실패하면서 경영권 인수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결국 2016년 당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금호타이어 매각의 총대를 멨고 공개입찰 끝에 2017년 1월 더블스타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먼저 사들일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박 회장 본인의 돈으로만 인수할 수 있다는 제한도 함께 걸려 있었다.

이 때문에 박 회장은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금호타이어를 사들이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 전 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의 ‘금호’ 상표권 사용기간과 이용료에 문제를 제기해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매각이 늦어지는 동안 금호타이어의 실적은 더욱 나빠졌다.

이 전 회장과 채권단도 박 회장의 ‘지연 전술’에 속을 앓아야 했다. 채권단은 박 회장이 바라는 금호타이어 상표권의 계약 내용을 받아들일 뜻도 보였다. 

그러나 더블스타가 2017년 9월 금호타이어의 실적 악화와 가격 문제를 이유로 금호타이어 인수를 포기하면서 결국 금호타이어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 전 회장이 이때 중도사퇴한 데에도 금호타이어의 매각 무산이 영향을 미쳤다. 박 회장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다가 매각에도 실패했다는 점이 그를 괴롭혔다. 

이 전 회장이 퇴임식에서 “산업은행을 세상의 변화를 이기는 강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 뼈가 실린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전 회장의 동명이인이자 후임자인 이동걸 현 산업은행 회장은 2017년 9월 취임하자마자 전임자의 말대로 ‘강한 조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박 회장의 자구계획안을 거절했다. 

그는 당시 박 회장과 면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의 우선매수청구권, 경영권, 상표권을 내려놓았다”며 “약속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믿고 나아가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독자생존이 가능해야만 한다"는 말을 지키면서 금호타이어 구조조정에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앞세워 경영 악화에 책임이 있는 박 회장의 회사 인수를 사실상 막은 셈이다. 

이 회장은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자 독자생존 원칙을 기준으로 판단한 끝에 2018년 3월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중국 더블스타에게 다시 팔기로 결정했다. 

금호타이어가 독자적 생존하려면 중국 공장의 부실을 털어야 하는 만큼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더블스타에게 회사를 맡겨야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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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걸 전 KDB산업은행 회장.

금호타이어 노사가 더블스타의 회사 인수에 동의하는 마감시한으로 3월30일을 제시했고 국내 인수설 등 혼란이 벌어질 때도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더불어 금호타이어 노조와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지자 윤장현 광주시장과 조삼수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대표지회장 등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 회장에게 든든한 우군도 있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호타이어 사태의 해법은 더블스타의 회사 인수뿐이라며 이 회장에게 여러 차례 힘을 실어줬다. 

채권단의 자율협약 마감시한이고 금호타이어의 법정관리 돌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던 3월30일 금융위원장으로서 이례적으로 이 회장과 함께 광주를 찾아 노조를 함께 설득했다. 

차이융썬 더블스타 회장도 첫 인수 시도와 달리 3월 한국을 찾아왔고 금호타이어 노조 관계자들도 직접 만나 ‘먹튀’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금호타이어 노조가 더블스타의 회사 인수를 받아들이면서 3월30일 간담회에 참여한 이 회장과 최 위원장, 윤 시장, 조 지회장 등 '광주의 9인'은 금호타이어 사태의 막을 닫고 새로운 출발의 시동을 걸게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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