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6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한미FTA 개정협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
“수동적이고 수세적 골키퍼 정신은 당장 버려야 한다. 상대방이 제기하는 사안에 대해서만 수세적, 방어적 자세로 통상업무를 해나간다면 구한말 때처럼 미래가 없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017년
문재인정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취임하면서 취임사를 통해 이익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공격적 통상교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26일 발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합의에서 그의 말처럼 방어뿐 아니라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우선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이 나왔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와 관련해 불합리한 조항을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투자자들의 소송 남발을 막고 정부가 외국 투자자들의 소송 우려없이 정당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보호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또 무역구제 관련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산 세탁기에 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하거나 철강·변압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서 불리한 가용정보(AFA)를 근거로 제시했다.
불리한 가용정보는 미국 정부가 요청한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는 등 충분히 협조하지 않는 기업에 제소자의 주장 등 불리한 정보를 이용해 관세 등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이번에 한미FTA 협정문을 개정하면 반덤핑 조사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현지 실사 규정 등 산정 내역을 공개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섬유제품에서 일부 원료품목의 원산지 기준도 개정된다. 기존에 협상 전략 가운데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부분이다.
자유무역협정에서 원산지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동일한 가공품이라도 원료의 원산지가 어딘지에 따라 관세 혜택을 받거나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FTA에서 섬유제품은 미국산 원부자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원사규정, 비원산지 재료 비중을 제한하는 최소허용수준 등의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받는다. 사후 원산지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특혜받았던 관세를 추징당하기도 한다.
김 본부장은 미국에 원하는 것을 내주면서도 우리 요구사항을 반영하면서 협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김 본부장은 일찌감치 협상 범위를 좁혔다. 미국이 농축산물 추가 개방, 자동차 부품 의무사용, 관세 부활 등을 요구하는 데 명확하게 물러설 수 없다는 레드라인을 설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요구사항은 자동차분야에 집중됐다. 화물자동차 관세 철폐 기한이 연장되고 제조사별로 5만 대까지 안전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 국산 화물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해 있지 않고 미국 자동차의 수입량이 제조사별로 1만 대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합의”라고 평가했을 만큼 미국도 협상 결과에 어느 정도 만족한 모양새다. 힘든 상황에서 나쁘지 않은 결과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한미FTA 폐기를 언급했을 만큼 협상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여기에 철강 관세 부과까지 결합하면서 협상 방정식은 더욱 복잡했다.
김 본부장도 “출발선부터 양국 사이 의견 차이가 매우 컸다”며 “치열한 협상을 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협상가로서 꿀릴 것이 없는 협상판이었다”며 “대통령께서 협상의 전권을 위임해 줘 국익만 생각하면 되는 협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큰 그림을 보고 앞으로 나가야 할 시점”이라며 “통상 측면에서 관세와 FTA를 넘는 새로운 통상정책으로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