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나를 믿는다니까, 멍청이들!” (They trust me, dumb fucks!)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하버드 대학생 시절 페이스북의 전신인 학내 전산망을 만들고 이렇게 말했다.
▲ 미국 영화배우 짐 캐리는 트위터를 통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을 그린 그림을 공개했다.
낯선 형태의 온라인 공간에 학생들이 너도나도 스스럼없이 자기정보를 올리는 것을 보고 의아해진 친구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자 내뱉은 오만한 답변이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저커버그는 “이용자들을 우습게 여기느냐”는 거센 비판에 마주했다.
5천만 명 이상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면서 페이스북은 시가총액이 53조 원 넘게 증발했다. 수많은 전 세계 유저들과 투자자들이 대규모 소송에 나서고 있다. 벌금이 2천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저커버그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경제적 타격 외에도 '개인정보 보호'라는 소중한 가치를 저버렸다는 윤리문제로 뭇매를 맞고 있다. 진보적 가치를 대변하는 유력한 대선 잠룡에서 얄팍한 장사꾼으로 전락할 위기인 셈이다.
저커버그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것은 코건과 CA(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페이스북 사이에서 일어난 신뢰 문제이기도 하지만 페이스북이 개인정보를 보호할 것으로 믿었던 사람들과 페이스북의 신뢰 문제이기도 하다”며 “나는 페이스북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플랫폼에서 일어나는 일에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2013년 알렉산드르 코건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원은 심리테스트 앱 ‘디스이즈유어디지털라이프’를 만들어 당시 앱을 설치한 페이스북 이용자의 친구 등 수천만 명의 정보를 모았다.
5천만 명가량의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는 코건을 통해 데이터분석기업 CA로 넘어갔다. CA는 페이스북 이용자가 어떤 정치·경제·사회적 성향을 보이는지 등을 빅데이터화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선후보 캠프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커버그는 2015년 CA가 무단으로 페이스북 개인정보를 이용했음을 알게 됐고 자료 삭제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지난주 언론을 통해 CA는 최근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이번 CA 정보유출 사태로 충격에 휩싸였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계정들에서는 페이스북 삭제운동(#DeleteFacebook)이 벌어지고 있다. 페이스북에 왓츠앱을 매각한 브라이언 액턴도 이 운동에 참여하며 트위터를 통해 “페이스북을 삭제할 때가 됐다”고 호소했다.
저커버그는 사태가 벌어진 후 줄곧 침묵을 지키다 나흘 만에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먼저 앱 개발자의 정보 접근이 제한되기 전인 2014년에 페이스북 사용자 정보에 접근한 적이 있는 앱 개발자들을 파악해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개발자의 정보 접근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이용자들의 정보 통제권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떠나간 이용자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이번 CA 사태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벌어져왔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가입자 세부정보는 2010년 파일공유사이트인 ‘토렌트’에도 공유된 적이 있다. 페이스북에 이미 공개되어 있던 자료였지만 대용량으로 한꺼번에 공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소셜네트워크(SNS)사회에 충격을 줬다.
2013년에는 페이스북 자체 버그로 6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이렇듯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계속되면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이용자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에 따르면 소셜네트워크(SNS)를 활발히 사용하는 미국 영화배우 짐 캐리는 이번 사태를 두고 “(페이스북 유저)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와 당신 인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저커버그가 “하버드생들 정보가 필요하면 나한테 물어보라”며 사용자들의 신뢰를 가볍게 여기던 스무살 청년시절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 않느냐는 염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