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감수하고 있다.
지난해 순이익 경쟁에서 신한금융그룹은 KB금융그룹에게 밀렸다. 하지만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4분기에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쌓았다. 배당성향도 낮췄다.
조 회장은 당장의 순이익 경쟁보다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체질개선에 더욱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순이익 ‘3조 클럽’에 나란히 입성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신한금융그룹이 이에 못 미쳤고 두 금융그룹의 순이익 격차가 예상치보다 크게 나타났다.
KB금융그룹은 지난해 순이익 3조3119억 원으로 국내 금융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순이익 3조 원을 넘기며 2008년 이후 9년 만에 1등 금융그룹 자리를 차지했다.
반면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순이익 2조9179억 원을 거둬 두 그룹의 순이익 격차는 3940억 원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1천억 원 내외의 차이로 KB금융그룹이 근소하게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크게 벌어졌다.
신한은행이 지난해 4분기에 희망퇴직비용 등 일회성 비용을 반영했을 뿐 아니라 대우조선해양과 금호타이어 등과 관련해 1400억 원 규모의 충당금을 추가로 쌓았기 때문이다.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계열사들의 대손비용도 지난해 4분기에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신한카드의 대손비용이 지난해 9월보다 106% 증가하고 다른 비은행계열사들의 충당금도 다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반적으로 2018년을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 비용집행 성격이 상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파악했다.
신한금융그룹은 6년 만에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뒀지만 오히려 배당성향을 낮췄는데 점진적으로 배당성향을 늘려가겠다는 기존 전략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지주의 배당성향은 23.6%(1주 당 1450원)로 지난해보다 1.2%포인트 낮아졌다.
배당을 늘리기보다 자금을 확보해 인수합병 및 자본운용에 더욱 집중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신한금융그룹은 글로벌 인수합병을 통해 그룹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영웅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은 7일 기업설명회에서 “앞으로 인수합병은 그룹 자기자본이익률(ROE)를 개선할 수 있는 업종이나 기업, 미래성장이 담보된 기업, 국내보다 글로벌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그룹의 새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사업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전략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한은행과 신한카드가 지난해 각각 호주 ANZ은행의 베트남 소매금융(리테일)부문과 푸르덴셜금융그룹의 베트남 소비자금융회사인 ‘푸르덴셜소비자금융’을 인수했던 것처럼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동남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인수합병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지난해 글로벌기업들과 제휴를 늘리며 글로벌 투자 확대와 디지털 전환을 위한 포석도 깔아뒀다.
중국 푸싱그룹, 일본 미즈호금융그룹 등과 손잡고 해외시장의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금융 및 투자 노하우를 접목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또 미국 아마존이 보유한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서비스 등 디지털기술을 금융업에 적용하기로 했고 신한카드를 통해 글로벌 지불결제 사업자인 페이팔과 함께 아시아 전자결제분야에서 공동으로 사업을 발굴하기로 했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순이익 격차를 좁히는 것보다 중장기적으로 그룹의 체질개선을 위한 토대를 닦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