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재용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경영진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쐈다. 사업부문장과 대표이사를 모두 교체했다.
다만 발탁인사를 하기보다는 예측가능한 세대교체를 선택했는데 이 부회장 구속수감으로 리더십이 위기인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변화 속 안정’을 결정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31일 각자대표이사와 사업부문장을 맡던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후임 경영진이 자리를 물려받게 됐다고 밝혔다.
권오현 부회장이 대규모 인적쇄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가장 먼저 사퇴의사를 밝힌 데 이어진 것으로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던 주요경영진 3명이 모두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
새 경영진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도 사업부문장과 대표이사의 역할을 바로 밑에 있는 후임자들이 물려받도록 해 안정적 교체도 최대한 살렸다.
김기남 사장은 권 부회장의 뒤를 이어 DS부문장을, 김현석 사장은 CE부문장을, 고동진 사장은 IM부문장에 오르고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각자대표이사에 선임된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이 실형선고를 받으며 총수공백 사태로 리더십 위기가 커진 상황인 만큼 ‘큰 틀’은 유지해 세대교체에 따른 혼선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새 사업부문장들은 이전부터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등 주력사업을 총괄해오면서 이미 능력을 검증받은 인사들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신임 부문장들은 일찍부터 각 사업영역에서 폭넓은 경험과 역량을 갖춘 만큼 불확실한 경영환경에도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 의장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재무통’으로 자금관리를 총괄해오던 이상훈 경영지원실 사장이 추천됐다. 가장 연장자로서 삼성전자 신임 대표이사들을 이끄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되는 점은 권오현 부회장이 글로벌 반도체업계에서도 자타 공인하는 '기술통' CEO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새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 등 대규모 투자, 삼성전자 지배력 확대를 위한 지주사 전환, 주주환원정책 결정 등에 이사회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이 사장이 새 대표이사의 병풍 역할을 하면서도 재무통으로서 경험을 충분히 살려 삼성전자 차원의 의사결정을 주도할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던 대표이사들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점은 ‘이재용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겠다는 의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시기에 대표이사를 맡았던 경영진들이 모두 물러나면서 박근혜 게이트와 결별하는 상징성도 있다.
▲ 삼성전자 신임 대표이사에 오르는 김기남 삼성전자 신임 DS부문장, 김현석 CE부문장, 고동진 IM부문장(왼쪽부터). |
이 부회장은 현재 항소심을 받고 있는데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조심스럽게 집행유예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설령 구속수감이 오래 가더라도 더이상 리더십 부재의 상황을 방치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사실상 ‘통과의례’를 거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본격적으로 삼성그룹에 이 부회장의 친정체제가 구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의 공격적 인적쇄신은 향후 다른 계열사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다소 정체됐던 경영진 세대교체에 삼성전자가 촉매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최대한 검증된 경영진으로 구성하고 의사결정 구조도 유지했다. 그만큼 세부적 인사와 조직개편 등에서 더 공격적으로 변화를 추진할 여지가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재용 시대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해외파 경영진과 소프트웨어 등 신사업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들이 후속 인사를 통해 대거 전진배치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