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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치욕의 역사가 지도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7-10-13 19: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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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치욕의 역사가 지도자에게 던지는 메시지
▲ 영화 '남한산성' 스틸이미지. 
김훈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정통사극이란 점에서 반갑다.

기름기를 쫙 뺀 담백한 화법이 인상적이다.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영화인데도 상업적 재미를 추구하기보다 메시지 자체를 전달하는 데 비교적 충실했다.

현재 추세로 보면 역사적 사실을 다뤄 천만관객 영화 반열에 올랐던 ‘명량’이나 ‘광해’와 같은 폭발적 흥행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물론 배우의 연기력이나 영화적 만듦새가 결코 떨어지는 건 아니다. 단지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이나 극적 반전을 경험할 ‘통쾌함’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순신 장군이 고뇌에 찬 결단 끝에 10여 척의 거북선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짜릿해할 만한 그런 통쾌한 경험 말이다.

그렇다고 영화 광해에서처럼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의 이면에 감춰진 인간적 면모를 엿볼 드라마틱한 요소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국가와 개인의 생사가 기로에 놓인 급박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인물들의 대립이 극대화될 뿐이다. 김상헌과 최명길로 각각 대표되는 척화파와 주화파의 명분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성문을 열고 나가 죽을 각오로 적과 싸울 것인가, 아니면 적에게 무릎을 꿇고 살길을 찾을 것인가 양자택일만이 있다.

영화 속에서는 양극단의 대척점에서 두 신하가 펼치는 설전이 마치 연극의 대사를 방불케하듯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로 십분 활용됐다. 찬반 주제토론의 모범적 예라고 볼 법도 하다.

명청 교체기의 당시 세계사적 상황과 성리학적 이상국가 건설의 한계에 맞닥뜨린 조선 중기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상상해보자면 두 사람의 대립은 실제 전쟁보다 더 치열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총칼을 들어야만 전쟁을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영화적으로 보면 말로만 하는 전쟁이 다소 따분하고 김빠지는 걸로 보일 순 있다. 전투신이 전혀 없는건 아니나 압도적 스케일이나 박진감을 기대할 정도는 아니다. 더욱이 지도자의 무능이 낳은 굴욕적 역사의 한 장면을 굳이 돈 주고 보고 싶지 않은 심정도 있다.

영화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뒤 마침내 청에 굴복하기까지 40여 일의 극적 상황에 초점이 맞춰졌다. 병자호란으로 기록된 전쟁의 전말은 생략돼 있다.

사료를 참고해보면 청이 대군을 이끌고 한양을 향해 몰아쳐온 것은 침략적 지배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저무는 해’인 명을 버리고 ‘뜨는 해’인 청을 섬길 것을 요구했을 뿐이다. 세계사적 전환을 제대로 읽지 못한 국가 지도자들의 무지와 무능이 불러온 참사였다.  

피할 수 있었던 싸움을 벌이느라(그것도 제대로된 전쟁도 치르지 못했지만) 영화 속 서날쇠와 같은 이름 없는 무수한 백성들을 춥고 굶주리고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로 내몰았다. 위정자들이 위기를 부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다.  

역시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았지만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막대한 조공요구를 받아들여야 했고 부녀자들은 청나라에 보내져 치욕을 겪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망을 치거나 돈을 바치고 고향에 돌아온 부녀자들은 ‘환향녀’란 비난을 들었고 이들의 이혼을 둘러싼 공방이 당시 사회문제로 떠올랐을 정도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운명을 결정할 지도층 인사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도 낯설지 않은 탓이다.

사드배치와 북한의 핵실험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대치국면으로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필두로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지도자들이 경쟁이라도 펼치듯 ‘막말’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대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선택은 명백한 대립구도 아래 이뤄진다. ‘A and B’가 아니라 ‘A or B’다. 영화에서처럼 끝까지 싸울 것이냐(척화파), 화해를 모색할 것이냐(주화파) 가운데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햄릿 식으로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를 외칠 뿐 어정쩡하게 머무는 건 있을 수 없다. 영화도 두 인물의 대립과 인조의 선택에 집중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만 그렇다. 국가적 위기상황이나 중대한 의사결정과 같은 ‘정치적’ 선택에서 or가 반드시 동시성을 띨 필요는 없다. 현명한 선택은 적절한 타이밍을 통해 and가 성립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럴 때의 and는 'A, and B'가 될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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