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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동부제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부실경영으로 실패한 오너’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김 회장은 왜 실패한 오너 경영인이 됐을까?
김 회장은 일중독이라 불릴 만큼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회장의 일 욕심은 끊임없는 사업확장으로 이어졌고 동부그룹은 단기간에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무리한 확장은 결국 재무구조의 부실을 낳았다.
김준기 회장은 삼성그룹을 따라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한동안 삼성그룹 출신들을 대거 불러모았다.
그러나 오늘날 삼성그룹을 만든 선택과 집중 전략은 따라 하지 않았다. 삼성그룹 출신들은 동부그룹의 성장을 이끌기도 했지만 내부 결속력을 무너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김 회장의 성공신화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그는 창업주로 사업확장에서 추진력을 발휘했지만 독선에 사로잡혀 사업을 정리하지 못했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대표적 사례가 동부그룹의 재무구조 위기를 낳은 반도체사업이다.
◆ 일벌레 김준기, 욕심도 과했다
김준기 회장은 재계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일벌레다. 회사에 출근해서 아침부터 새벽까지 마라톤회의를 열기 일쑤다. 이마저도 부족하면 주말에 임원들을 집으로 불러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하기로 유명하다.
김 회장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하기 위해 패스트푸드나 백화점, 슈퍼에서 파는 음식으로 식사를 대신해 밥 먹는 시간도 줄였다. 오너 경영인 가운데 가장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김 회장은 많이 일할 뿐 아니라 열심히 일했다.
그는 늦은 시간에 퇴근해 집에서도 각종 보고자료를 검토하면서 계열사의 현안들을 꼼꼼히 살폈다. 동부그룹이 2002년 아남반도체 인수에 나섰을 때 반도체 관련 각종 서적을 읽고 그 내용을 인수팀에 강의하기도 했다.
김 회장의 일 욕심은 사업 욕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1969년 자본금 2500만 원으로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창업한 뒤 계속 회사를 설립하고 인수합병을 했다. 그 결과 2013년 기준으로 동부그룹은 3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17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건설업에서 번 돈으로 1983년 한국자동차보험공영사(현 동부화재)를 인수해 금융사업의 기반을 다졌다. 1997년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를 설립한 뒤 2001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합병해 반도체사업을 확대했다.
동부그룹은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난이 깊어졌고 1997년 외환위기의 역풍까지 맞았다. 부채비율이 치솟으면서 2003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준기 회장은 인수합병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이후 인수한 회사는 동진제강(현 동부제철), 다사로봇(현 동부로봇), 동화청과(현 동부팜청과), 네오세미테크(현 동부솔라), 대우일렉(현 동부대우전자) 등 수두룩하다.
◆ 삼성의 ‘선택과 집중’은 왜 따라하지 못했나
동부그룹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졸업에 번번히 실패했다. 김준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구조조정을 계기로 이제부터 우리는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내실을 강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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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김 회장이 확장에서 내실지향으로 경영전략을 선회한 셈인데 이에 대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재계에서 나왔다. 버렸어야 할 계열사들은 진작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부그룹은 ‘애프터 삼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삼성그룹을 따라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주력사업으로 키우려던 자동차사업(삼성자동차)과 향후 성장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유통사업(삼성테스코)을 과감히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사재도 내놓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동부그룹은 삼성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따라하지 못했다.
김 회장의 삼성 따라하기는 인사영입에서 두드러졌다. 김 회장은 동부그룹의 출발이 다른 대기업보다 늦었기 때문에 격차를 단기간에 줄이려면 검증된 삼성출신 인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김 회장이 삼성맨을 영입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도 거뒀지만 동부그룹 내부출신들의 사기가 떨어졌고 조직화합을 저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 출신 CEO가 온다고 해서 기업문화가 일순간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내부출신은 승진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을 퍼트렸다는 것이다.
동부그룹에서 삼성그룹 출신 인사의 비중은 한때 40%가 넘었다.
김 회장은 2001년 이명환 전 동부 부회장(삼성 비서실 출신)을 시작으로 김순환 동부CNI 부회장 (전 삼성화재 부사장), 김병태 전 동부화재 부사장(전 삼성화재 상무), 손재권 동부화재 부사장(전 삼성화재 상무), 최진균 동부대우전자 부회장(전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 등 최근까지 삼성맨을 계속 영입했다.
김준기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따라 하지 못한 것은 또 있다. 김준기 회장은 지난해 말 동부그룹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1천억 원을 사재출연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태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삼성생명 주식(당시 가치 2조8천억 원)을 사재출연했다.
김준기 회장도 2009년 35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계열사 부실에 대한 책임을 졌다. 그러나 이 돈이 고스란히 반도체 계열사인 동부하이텍 지원에 사용됐다. 김 회장은 이번에도 1천억 원의 사재출연을 약속했지만 결국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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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 창업주 독선과 집착 통제에 실패
김 회장의 반도체사업에 대한 집착이 동부그룹 자금난을 낳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 회장은 반도체사업을 손에서 놓지 못해 동부그룹의 재무구조 부실을 키웠다.
동부하이텍은 1997년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김 회장은 2001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려고 했을 때 주변의 만류가 컸음에도 인수를 강행했다.
김 회장이 동부하이텍에 지원한 사재만 3500억 원이다. 동부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이 동부하이텍에 투자한 돈은 3조여 원이다. 동부그룹은 유동성 위기가 심화하자 동부하이텍 매각에 나섰고 현재 매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준기 회장이 창업주가 아니었다면 반도체사업에 이렇게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창업주로서 독선과 집착이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준기 회장은 창업주로서 사업기회를 잡아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의지를 보여줬다”면서도 “그러나 반도체사업은 지나친 집념이 부메랑이 돼 그룹 전체에 부담을 가중시킨 사례”라고 말했다.
김준기 회장은 창업주다. 제 손으로 일군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그룹이 벼랑 끝에 몰린 뒤에야 계열사들을 하나씩 버리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경영권을 대물림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또한 창업주의 집착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동부CNI는 지난 7월 회사채 상환을 위해 보유하던 동부팜한농 주식을 김준기 회장 외아들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과 딸 김주원씨에 매각했다.
동부CNI는 이로써 유동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동부팜한농에 대한 후계자 김남호 부장의 지배력이 확대됐다. 동부팜한농은 전국에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알짜기업이다.
김 회장은 또 동부제철 경영에서 물러나는 등 동부제철은 포기하면서도 동부그룹 금융계열사는 지키려고 한다. 김 회장은 김남호 부장이 보유하고 있는 동부화재 지분을 놓고 산업은행이 담보를 요구했을 때 이를 거부했다.
김 회장의 외아들인 김남호 부장은 동부화재 지분 15.19%를 보유해 최대주주다. 동부화재는 동부 금융계열사의 지주회사격이다. 동부 금융계열사는 사실상 김남호 부장이 지배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