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에 나설 의지를 보이면서 한국 철강업계에 가해질 통상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업계는 이미 미국의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로 피해를 입고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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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준 포스코 회장(왼쪽)과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
3일 재계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FTA 재협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30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자동차, 철강 무역문제를 이야기했다”며 “한국에 중국의 철강 덤핑수출을 허용하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고 말했다. 자동차와 철강을 불공정무역 사례로 직접 지목한 것이다.
한미FTA 재협상 논의가 시작되면 가장 타격받는 분야는 철강업계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무역은 서로 제품을 수출하는 쌍방적 관계인 반면 철강무역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미국에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철강 수출의 약 12%를 차지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주요 철강기업이 집중돼 있는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벨트(Rust Belt)’ 지역 표를 확보해 대선에 승리했다”며 “대선기간 미국 철강산업의 부흥을 강조해 왔던 만큼 압박의 강도를 계속 높여나갈 것”이라고 바라봤다.
미국이 문제 삼는 것은 한국 철강회사들의 ‘덤핑’ 수출과 한국을 통한 중국산 철강의 ‘우회덤핑’ 수출이다.
우회덤핑이란 반덤핑관세를 맞은 제품의 생산기지를 바꾸는 방법으로 규제를 피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철강회사들은 미국 정부가 제품에 고율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자 베트남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값싼 중국산 철강제품을 수입한 뒤 이를 재가공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가는 중국 철강은 한국 전체철강 수출물량의 2% 정도의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일 JTBC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철강의 우회수출을 차단한다든지, 우회적인 덤핑을 방지하는 조항을 한미FTA 개정을 통해 집어넣으려고 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FTA효과가 거의 사라지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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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국내 철강회사들은 이미 미국 정부의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3월 포스코 후판에 11.7%의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를 부과했고 4월에는 현대제철과 넥스틸의 유정용강관에 각각 13.8%, 24.9%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게다가 미국이 반덤핑규제에 그치지 않고 철강수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상무부는 외국산 철강제품 수입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는데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에 따라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래로 단 두 번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했는데 2002년 철강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조처를 취했을 때 미국을 향한 한국의 철강 수출은 1년 만에 30% 이상 줄었다.
정부는 미국에 한미FTA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FTA 영향 등을 평가하자고 제의하며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 대책마련에 속도를 내기 위해 3일 백운구 한양대학교 교수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한미FTA 재협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 교수는 “한미FTA 규정상 미국이 재협상 개시를 통보를 하면 우리나라 동의 없이도 30일 뒤 개정협상 논의가 진행되도록 돼 있다”며 “우리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한미FTA 파기 상황까지 올 수 있는 만큼 재협상을 전제로 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