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하는 데 걸림돌을 계속 만나고 있다. 당초 계획과 달리 단독인수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해지고 있다.
일본정부가 인수전에 점점 깊숙이 개입하며 SK하이닉스가 일부 지분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도 있어 인수효과를 온전히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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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 |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9일 “일본정부가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의 원만한 합의를 권고하는 등 반도체사업 매각에 점점 더 적극적으로 끼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가 반도체사업 매각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경우 낸드플래시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매각계획에 제동을 걸고 있다. 국제기구에 중재를 신청하는 등 강력한 법적대응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정부는 그동안 도시바 기술유출의 가능성을 우려했는데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의 자금확보에 나서며 직접 도시바 반도체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힘을 싣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INCJ는 최근 반도체기업 르네사스의 지분을 매각해 약 3조 원을 확보한 뒤 도시바에 투자하기로 했고 기존에 보유한 10조 원 정도의 자금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로이터는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INCJ와 손을 잡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일본정부가 대규모 지분확보로 해외기업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도시바가 법적분쟁을 벌일 경우 매각이 지연될 것을 우려해 웨스턴디지털과 분쟁을 멈추고 화해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도 인수전에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도시바는 최근 웨스턴디지털 임직원이 기술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차단조치를 해제했다. 또 웨스턴디지털에 재협상을 진행하자는 의사도 표했다.
도시바가 원전사업 실패로 지난 회계연도에 10조 원 가까운 순손실을 내 내년 3월까지 반도체사업 매각으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상장폐지가 확정된 만큼 한발 물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무역통상장관은 니혼게이자이를 통해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 사이 불필요한 분쟁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며 이 문제를 놓고 미국정부와 직접 논의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웨스턴디지털이 일본정부와 공동으로 도시바 반도체사업을 인수할 가능성이 더 유력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쪽 모두 20조 원 가까운 인수금액에 부담이 큰데다 웨스턴디지털이 이전부터 도시바와 기술협력을 해온 만큼 일본정부가 기술유출과 경영권이 넘어갈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바는 이런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과 주주들에 반도체사업 매각으로 최대한 많은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이전부터 꾸준히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이런 상황에서 일본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인수전에 우회전략을 쓸지, 대규모 자금투입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쓸지 업계의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당초 계획했던 21조 원을 웃도는 액수를 제시할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이전에 “본입찰이 시작되면 금액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SK하이닉스는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기술과 생산시설을 모두 확보해 강력한 인수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웨스턴디지털과 일본정부의 반대가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이 INCJ와 협력해 반도체사업 지분 절반 정도의 인수를 노리는 과정에서 SK하이닉스가 지분을 일부 출자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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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 |
베인캐피탈은 도시바의 경영권도 그대로 유지한 채 향후 반도체사업을 별도로 상장해 투자금을 회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파트너로 삼은 SK하이닉스의 기술력과 사업경험을 앞세워 도시바의 반도체사업이 자체 성장기반을 갖추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앞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정부 입장에서는 충분히 환영할 만한 선택지로 꼽힌다. 이 경우 SK하이닉스의 인수전 참여에도 도시바의 반도체기술과 경영권을 모두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로서는 이런 방식으로 일부 지분만을 확보할 경우 실제 사업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SK하이닉스는 비밀유지조항을 이유로 인수전 참여방식에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최 회장도 다양한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만 밝히고 있다.
도시바는 19일을 반도체사업 본입찰 마감일로 잡았지만 만족스런 제안을 받지 못할 경우 기한을 연장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마지막까지 업계의 관측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만큼 당분간 불확실한 상황이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