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질리티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디짓5가 다리를 굽힌 자세로 부품이 든 상자를 손으로 집어 들고 있다. <애질리티로보틱스 X 영상 갈무리> |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는 아직 이익을 내는 기업이 소수에 불과하며, 중국 유니트리를 제외하면 이전까지 증시에 상장한 사례도 없었다. 애질리티의 이번 상장은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향후 상장 추진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5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질리티는 특수목적 인수회사(SPAC)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이날 나스닥에 상장해 거래를 시작했다. SPAC는 비상장 기업을 인수·합병해 증시에 상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종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다.
상장 첫날 애질리티 주가는 공모가인 주당 10.00달러(약 1만3천 원)보다 높은 11.26달러(약 1만5300원)로 거래를 시작해 시초가보다 약 2% 상승한 11.49달러(약 1만5600원)로 장을 마쳤다.
2015년 설립된 애질리티는 물류기업 GXO와 독일 자동차 부품사 셰플러, 토요타 캐나다 생산시설 등에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Digit) 시리즈를 공급하며 상용화 사례를 확보했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액은 180만 달러(약 24억5천만 원)에 그친 반면 영업손실은 1억4천만 달러(약 1900억 원)에 달해 아직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입증하지 못했다. 이에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람의 형태를 본떠 만든 휴머노이드는 높은 범용성과 인공지능(AI) 학습을 통한 자율 구동 능력을 바탕으로 시장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JP모간은 지난 8월1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휴머노이드 판매액이 지난해 20억 달러(약 2조7천억 원)에서 2035년 3천억 달러(약 408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시장 성장 전망에 따라 애질리티와 같은 기업들이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증시 상장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이들 기업의 기업가치 변화에 현대차그룹도 촉각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역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미국 증시 상장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땅한 비교 대상 기업이 없었던 보스턴다이나믹스로서는 애질리티가 간접적으로나마 기업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자체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2028년 미국 현지에서 양산해 현대차·기아 등의 공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연간 3만 대 규모의 아틀라스 생산능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상장을 서두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 ▲ 아야 더빈 보스턴다이나믹스 휴머노이드 응용전략 담당(왼쪽)과 잭 재코우스키 아틀라스 개발 총괄이 1월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현대차그룹 미디어데이에서 제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아직 아틀라스를 자동차 공장 등에 대규모로 배치하지 못했고, 적자 상태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단기간 내 상장이 어려운 배경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 물류 계열사이자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의 공시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지난해 5284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2021~2025년 누적 순손실은 1조7558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 기준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지분 구조는 HMG글로벌 56.4%,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22.6%, 현대글로비스 11.25%, 일본 소프트뱅크 9.65% 등이다. HMG글로벌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참여한 그룹 투자법인이다.
최근 소프트뱅크가 보유 지분을 되팔기 위해 풋옵션(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을 행사했고, 현대차그룹은 해당 지분을 인수해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질리티 역시 아직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향후 기업가치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시점을 결정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
이에 앞서 중국 휴머노이드 기업 유니트리의 상장도 현대차그룹에 참고 사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유니트리는 상장 이후 주가 급등락을 겪고 있다.
로이터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유니트리 주가는 지난 8월19일 상장 이후 한때 약 55%까지 하락했다가 지난 10월에는 65% 이상 반등하는 등 큰 변동성을 보였다.
지난 5일 종가는 683.94위안(약 13만9천 원)으로 상장 첫날 종가인 845.00위안(약 17만2천 원)을 밑돌았다.
유니트리는 올해 3분기 매출액 6억6500만 위안(약 1354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증가한 수준이다. 반면 순이익은 17.4% 감소한 1억1270만 위안(약 230억 원)으로 시장 예상치인 2억2400만 위안(약 456억 원)을 크게 밑돌았다.
유니트리의 사례는 휴머노이드 기업이 실적 성장을 이루더라도 시장에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로이터는 "투자자들은 유니트리의 실적을 향후 중국 휴머노이드 제조업체들의 상장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중국 기업이 아니며 휴머노이드의 판매 대상과 주요 시장도 다른 만큼 두 기업의 가치를 일대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상장 시점과 기업가치를 가늠하는 간접적인 지표로는 활용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2028년까지는 뚜렷한 휴머노이드 판매 실적 없이 성장성만으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애질리티의 상장 사례는 더욱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페기 존슨 애질리티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애질리티는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처음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이 우리의 동향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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