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025년 9월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큰 흐름을 보면서도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지혜로운 자세를 의미하는 사자성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025년 9월15일 취임사의 마지막에 이 사자성어를 꺼내놓았다.
이 위원장은 “금융위를 향한 시장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큰 흐름을 읽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와 함께 금융 소비자와 금융 일선 담당자들로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업무의 중심에 두고 실제 시장과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의 전달체계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이 15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지난 1년 이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수장으로 부동산시장에 쏠린 자금을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으로 돌리는 ‘생산적금융’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금융권의 생산적금융 공급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국민성장펀드를 중심으로 민간자금까지 끌어들이는 큰 틀을 마련하면서 생산적금융의 판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는 이날도 금융권의 향후 5년 간 생산적금융 공급계획을 기존 1250조 원에서 1560조 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민간금융이 628조 원, 정책금융이 932조 원을 공급한다.
수출입은행과 수협은행이 기존에 추진하던 자금공급 계획을 생산적금융 체계에 포함했고 삼성증권도 새롭게 참여하면서 생산적 금융의 외연은 금융지주와 은행에서 정책금융기관과 증권사까지 넓어졌다.
금융위는 2027년 예산에서도 생산적금융의 핵심 정책수단인 국민성장펀드에 1조 원을 투입하면서 펀드 규모를 애초 150조 원에서 200조 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국민성장펀드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전략산업에 장기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이재명 정부의 대표 금융정책이다. 국민이 직접 투자하는 국민참여형 펀드를 통해 개인 자금까지 생산적 분야로 끌어들이는 구조도 마련했다.
다만 취임 2년차를 맞는 이 위원장의 어깨는 가볍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동안 대규모로 계획한 생산적금융 자금이 실제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으로 흘러가 성과를 내는 일이 중요해서다.
특히 생산적금융 공급계획이 1560조 원까지 커진 만큼 단순히 기존 금융회사의 자금공급에 생산적금융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권의 자금배분과 영업 관행 자체를 바꿔야 한다.
1년 동안 열심히 쌓아올린 정책 설계를 실제 변화로 바꿔내는 ‘꼼꼼함’이 요구되는 시점인 셈이다.
정책 신뢰 회복도 취임 2년차 이 위원장의 무거운 숙제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올해 5월 자본시장 활성화와 투자상품 다양화 등을 이유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도입했다.
하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출시 뒤 급격한 코스피 변동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비판을 받았다. 개인투자자 보호에 미흡했다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상품 도입 과정에서 위험성을 충분히 검토했는지를 놓고 이 위원장을 향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도입 관련 고발 사건 수사에 나서면서 논란은 법적 영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위원장이 취임할 때부터 신뢰금융을 핵심 과제의 한 축으로 내세운 점을 고려하면 뼈아픈 부분이다. 가계부채 관리에서도 정책의 정교함을 높여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위원장은 정부의 부동산시장 규제 강화 기조에 발맞춰 금융권의 가계대출 총량규제를 강화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잔금대출과 같은 실수요자 자금 조달도 막히면서 ‘대출 대란’이 벌어지는 등 시장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위는 결국 2026년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를 기존 1.5%에서 3%로 높여 실수요자 금융지원을 강화하는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합동 금융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초 가계부채 관리를 목표로 한껏 조였던 규제를 8개월 만에 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가계부채 증가율 관리와 실수요자 지원 사이 딜레마를 놓고 더욱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이 위원장이 추진력을 보여줘야 할 굵직한 금융 현안들도 쌓여 있다.
우선 금융지주 지배구조 선진화방안은 여러 차례 발표가 예고됐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 사이 주요 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인선은 현행 제도 아래 사실상 마무리되고 있다.
디지털자산시장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 입법 추진과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관련 제재도 금융당국이 매듭지어야 할 과제다.
이 위원장은 취임 1주년을 별도의 간담회 등 행사 없이 금융위 1년 내기 ‘입사동기’ 사무관, 주무관들과 점심을 함께 하는 것으로 보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2025년 9월15일 취임식에서 ‘금융 대전환’을 위한 핵심 과제로 제시했던 생산적금융과 소비자중심 금융, 신뢰금융을 해시태그로 걸어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이 위원장은 1년 전 취임사에서 “경제 전반의 혁신이 시급한 시점에서 미래를 위해서는 금융의 과감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며 “금융이 더욱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내하면서 생산적영역에 자금을 중개하고 금융상품 판매의 실질적 사전보호 장치와 사후 구제장치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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