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에 관세·유가 '내우외환', 산업장관 김정관 미국 무역법 301조·기름값 '겹 파도' 시험대
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6-03-09 15: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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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중동발 유가급등 리스크와 미국의 통상 압박이라는 ‘겹 파도’가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
미국의 무역법 301조(슈퍼 301조) 조사 가능성과 중동발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국내 기름값 인상 압력까지 겹치면서 한국 정부의 통상과 물가 대응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 사령탑 중 한 명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미국 워싱턴과 국내 정유업계를 오가며 위기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미국을 방문해 관세 문제 등 통상 현안을 협의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8일 귀국 직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정부 안팎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6일(현지시각) 대미 통상현안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해 각각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면담하는 등 미국 정부와 통상협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장관은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미국 연장대법원의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판결 이후 무역법 122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활용한 미국의 관세정책 추진 과정에서 기존 한미 사이 관세합의 사항이 실효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 통상 당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한국 국회의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 통과 지연을 이유로 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다시 25%로 올리겠다고 밝히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협의를 이어왔다.
그 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상호관세의 근거인 IEEPA 활용에 위법 판결을 내리며 트럼프 대통령 관세의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10%의 글로벌 관세를 부과했고, 추가적으로 관세율을 15%까지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김 장관은 8일 귀국 직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지금과 같이 한국에서 법(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한다든지 협상 관련한 내용이 이행된다면 관세 인상과 관련한 관보 게재 그런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와 반응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15%의 글로벌 관세에 관해서도 “우리나라가 경쟁국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동등한 대우를 받거나 오히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여지를 열어놓고 왔다”고 했다.
국회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이날 전체 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대미투자특별법을 의결했다. 12일 국회 본회의 통과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이 전한 미 행정부 분위기에 비춰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한국 관세인상 언급 1달여 만에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미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에 따른 추가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도 진행하겠다고 밝혀놓고 있다.
미 무역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때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 부과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대미 주력 수출 분야인 자동차·철강 등에 부과되고 있는 품목관세가 이 규정에 근거한다. 다만 해당 조항은 법정 조사 기간이 최대 270일에 달하는 데다 적용 대상이 특정 품목에 제한돼 있어 미국 정부는 301조 활용에 가장 큰 비중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미의 핵심 현안은 미국 투자자들이 제기한 ‘무역법 301조’ 조사 청원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무역법 301조는 교역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행위로 미국의 무역에 제약이 생기는 때 광범위한 영역에서 보복을 할 수 있도록 한 강력한 법적 장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국 국회에 발의된 온라인 플랫폼법 등을 놓고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여기에 1월 쿠팡에 투자한 미국 투자사들이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인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우했다며 무역법 301조 조사를 요청하면서 한미 통상 관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여 본부장은 그리어 USTR 대표를 만나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 간 합의한 비관세 분야 이행계획을 논의하고, 적절한 시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를 개최해 이행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또 쿠팡 투자사의 조사 청원이 한미 사이 통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이와 별도로 통상 현안만큼 시급한 것이 이란 전쟁으로 인한 국내 기름값 상승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자 그 여파가 전해지기도 전에 국내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며 민생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동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장관은 이날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내 정유 4사와 함께 ‘중동상황 대응본부 회의’를 열고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에 편승해 민생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평상시 국제유가와 2주 정도의 시차로 움직이는 국내 석유 가격이 요 며칠 사이 급등했다”며 “일반 국민은 석유 가격이 오른 땐 빨리 오르고 내릴 땐 천천히 움직인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 장관은 전날 최고가격제 도입과 관련해 “시장 상황과 여건에 대응해 준비는 마친 상태”라며 “시장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며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최고가격제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물가안정법)과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에 근거한 시장 개입 수단이다. 석유사업법 제23조는 석유의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산업통상부장관이 석유판매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제도가 도입될 경우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정유사와 주유소가 판매를 기피하면서 ‘공급 절벽’이 발생할 수 있고, 석유사업법 23조 3항에 따라 정부가 가격 통제로 인한 사업자 손실을 보전해줘야 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장관은 “그런 내용을 보고 있고, 발표 시점에 상세한 내용을 같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한시적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직접 개입 수준을 낮출 수 있는 후속조치와 시장 상황을 고려한 정교한 최고가격 설정 등이 중동발 유가 인상 여파를 최소화하는 데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김 장관을 비롯한 관계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동 지역 위기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 제품에 대해서는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부담이 서민에게 가장 먼저, 또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세심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