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은행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대출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일고 있지만 실제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은행법 개정의 법적 비용의 가산금리 반영을 막아 산술적으로 금리 인하 요인이 생겼다. 하지만 은행들이 우대금리 축소와 수수료 인상 등 다른 방식으로 수익율 방어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질적 차주 부담 완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얘기다.
▲ 은행법 개정안 통과로 대출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지만 실제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18일 금융업계와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은행이 대출금리를 산정할 때 반영하는 가산금리에 각종 법적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실질적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법 개정안은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은행법 개정안은 시중은행이 앞으로 한국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지급준비금, 예금보험공사에 납부하는 예금자보험료,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 등을 가산금리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다만 일부 보증기관 출연금은 출연료율의 50% 이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미만까지 대출금리에 반영할 수 있게 했다.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시행되며 시행 이후 체결되거나 갱신되는 대출 계약부터 적용된다.
개정안은 은행이 영업 과정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이자 사회적 책임 성격을 지닌 예금자보호기금 출연금과 서민금융 관련 출연금 등을 대출 고객에게 전가해 온 관행을 제도적으로 차단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가산금리 산정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높이고 은행의 과도한 이익 추구를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은행채 금리와 코픽스(COFIX) 등 시장·조달금리를 반영한 '지표(기준)금리'에 은행들이 임의로 덧붙이는 '가산금리'를 더한 뒤 은행 본점이나 영업점장 전결로 조정하는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빼서 계산한다.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포함되는 법적 비용은 △교육세 △기금출연료 △지급준비금 △예금자보험료 등이다.
앞서 은행권은 은행연합회 자율규제인 '대출금리 체계의 합리성 제고를 위한 모범규준'에 따라 이미 예금자보험료와 지급준비금 비용 등을 대출금리 산출 시 제외했다.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에서는 교육세와 상품별로 다른 서민금융진흥원·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출연금 등 법적 비용을 상당수 반영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산술적으로만 보면 대출금리는 내려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실제로 대출금리 인하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이 수익성 방어를 위해 우대금리 축소와 각종 수수료 인상, 대출 심사 강화, 저신용·저수익 여신 축소 등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수익 방어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은행권 비용을 법으로 직접 제한하는 방식이 시장 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수익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은행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각종 비용을 가산금리에서 제하면 매년 손실 규모가 약 2조1300억 원(4대 은행 합산)일 것이라고 자체 전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단발성 비용이 아닌 고정적 수익 감소라는 점을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은행권은 잇따른 세제 개편으로 수익성이 악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국회는 지난 2일 본회의에서 교육세법과 법인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교육세율을 0.5%포인트,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상했다.
특히 이번 은행법 개정안에서 최근 인상된 교육세율 인상분 역시 금리에 반영할 수 없도록 제한하면서 내년부터는 관련 비용 부담을 사실상 은행이 떠안게 됐다.
▲ 국회가 2일 본회의를 열어 교육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찬성 171인, 반대 84인, 기권 1인으로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세는 수익 1조 원 이상의 금융보험업을 대상으로 한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교육세 납부액은 2023년 약 4800억 원, 2024년 5036억 원으로 최근 몇 년간 5천억 원 내외에서 유지돼 왔다. 교육세는 이자·수수료·배당금·유가증권 매각·상환이익 등 '수익 금액' 전체에 세율을 적용하는 구조여서 비용·충당금·손실을 반영하지 않는 사실상 '매출 과세'에 가깝다.
하나증권 분석에 따르면 가산금리 통제가 적용된 상황에서 교육세·법인세 인상분이 순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은행지주사 순이익의 약 3% 수준으로 추산됐다. 은행별로는 우리금융이 3.3%로 가장 높았고 신한금융(3.1%), 하나금융(3.0%), KB금융(2.9%) 순으로 나타났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법 개정안으로 교육세를 대출금리에 전가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은행 이익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법인세율 인상분까지 반영할 경우 예상 부담 규모는 은행지주사 순이익의 약 3.0%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바라봤다.
이런 사정 탓에 업계에서는 개정 은행법이 막상 시행되더라도 대출금리 인하 기대 폭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테면 한국은행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축소하면서 최종 대출금리 변화는 미미했다. 가산금리를 낮춰도 우대금리를 축소하면 최종 금리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특히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도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높게 유지할 가능성을 높인다.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셧다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은 금리 하단이 연 4%대로 올라섰고 상단은 연 6%를 바라보고 있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0.4%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5년 고정형은 더 심각하다. 한 달 사이에 금리 하단이 무려 0.5%포인트 넘게 올랐다.
여기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자 은행채 등 시장금리도 상승하고 있다. 은행권이 시장금리 상승에 맞춰 예금금리까지 높이자 연쇄적으로 변동형 주담대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 금리도 9월부터 오르고 있다. 16일 발표된 11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는 전월 대비 0.24%포인트 오르며 3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나타냈다.
아울러 수익성이 낮아질수록 은행은 부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량 차주 중심으로 여신을 운용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 이 경우 중·저신용 차주에 대한 대출 접근성이 오히려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이자 수익 확대도 변수다. 이자 수익이 제약을 받으면 각종 수수료 인상이나 투자상품 판매 강화로 손실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형태만 달라질 뿐 금융소비자 부담은 여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가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에 법 개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소비자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가산금리에) '반영 금지'라는 개념은 기준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법 적용의 혼선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난달 10일 국회예산정책처가 개최한 '2025 세법개정안 토론회'에서 "교육세 부담이 늘게 되면 대출 가산금리에 포함돼 대출 이용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결국 증세의 부담이 금융소비자, 특히 대출에 의존하는 서민과 중소기업에게 전가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