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시행 약 6개월을 앞둔 노란봉투법이 벌써부터 산업현장에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철강, 반도체 등 주요 제조업 하청업체들은 원청 대기업을 향한 처우 개선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기업의 손해배상 등 책임이 커지면 고용이나 외국계 기업의 투자 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노동자 권익 강화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접근에 이어 파업 등 노사갈등 리스크가 오히려 줄어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는 노란봉투법이 국내 주요 기업과 경영단체, 정치권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법 시행 전부터 노사갈등 첨예화, 노동장관 김영훈 '진짜 시험대' 오르다
② 삼성전자 반도체 일촉즉발, ‘건설부터 부품까지’ 하청업체 파업 전운
③ SK그룹 최태원 벼르는 노조에 ‘초긴장’, 수만개 하청 파업 땐 주력사업 타격 불가피
④ 이마트 매장 출점·퀵커머스 확대 중 '큰 산' 직면, 한채양 본업 강화 난기류
⑤ 현대차그룹 노조 반발에 해외투자 차질 빚나, 정의선 로봇·자율주행차 신사업 '빨간불'
⑥ 건설사는 노란봉투법에 직접 영향권, 원청 범위 등 세부내용 결정에 촉각
⑦ 롯데백화점 판매직과 직접 대화 불가피해지나, 정준호 노조 달래며 갈길 바빠진다
⑧ 정책에 요동치는 주식시장, 노란봉투법도 코스피 5000 시대 주요 변수
⑨ 경총 손경식 역할론 대두, ‘사용자’와 ‘사업경영상 결정’ 해석에 재계 요청 담아내나
⑩ 한화생명 이경근, 전 직장 한화생명금융서비스 관계 다지기 업무 막중
⑪ 택배노조 원청 직접교섭으로 근로개선 목소리 더 커질듯, 택배업계 속도경쟁 제동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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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3월 노란봉투법 전면 시행으로 쿠팡발 배송 속도 경쟁 완화를 요구하는 택배 노조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2023년 11월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전국택배노동자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란봉투법 통과를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내년 3월 노란봉투법 전면 시행으로 택배업계의 배송 속도경쟁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각 택배 대리점에 소속된 택배기사들이 원청인 택배 기업과 직접 교섭권을 갖게 됨에 따라 택배노조는 근로 처우 개선과 업무 강도 완화 등을 더 거세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다는 노란봉투법의 또다른 조항 역시 원청인 택배기업에 큰 부담이다. 향후 손해배상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택배 기사들의 잇단 파업으로 물류 현장이 큰 혼란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7일 배송, 새벽배송, 퀵배송 등 택배 업계의 배송 속도 경쟁의 판도가 노조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21일 택배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내년 3월11일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택배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국내 물류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 범위를 원청기업으로 확대하고,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동자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이 뼈대로 하고 있는데, 택배 기사들의 강한 요구를 물류기업들이 더 이상 묵살하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택배기업은 각 지역 영업소와 대리점 계약을 통해 영업 구역 내 화물 처리를 맡기고, 대가로 도급비를 지급할 뿐이다. 개별 택배기사는 대리점과 맺은 화물 위수탁 계약에 따른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택배노조는 그동안 각 사의 대리점연합과 교섭하면서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원청인 택배 기업들은 교섭 의무가 없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 8월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그간 ‘진짜 사장’인 원청 택배사들은 대리점연합과의 교섭에 간접적으로 참여해왔으나, 이제 원청이 공식적으로 직접 교섭에 참여하고, 일부 의제를 추가하면 별다른 혼란 없이 교섭의 틀이 완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택배노조 측은 ‘쿠팡발 배송속도 경쟁’이 택배기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며 업무강도 완화를 요구하며 △365일 배송 규제 △택배기사 주5일 근무 제도화 △당일배송 원칙·배송마감시한 미준수 페널티 폐지 △노동시간 단축·수수료 인상 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쿠팡의 택배사업 진출 이후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주요 택배기업들의 택배 물동량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이들은 ‘주7일 배송’, ‘당일배송’ 등 서비스를 뒤늦게 도입하고 있지만, 서비스가 안착하기도 전에 노조의 반발이라는 난관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CJ대한통운 2025년 1월부터 ‘매일오네’ 주7일 배송 서비스를 공식 출범하고, 수도권 외 지역으로 서비스 확대 중이다. 한진은 지난 4월 말부터 일부 지역에 주7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주7일 배송의 사업성을 따져본 뒤 도입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다.
택배노조는 주7일 배송의 반대급부로 △배송수수료 인상 △주5일 근무제 안착 △복지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이 조건을 놓고 현재까지 우체국물류지원단,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회와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로젠 등과는 대리점협회와 기본협약만 체결하고 단체협약 조건을 논의하고 있는 상태다.
▲ 4년 전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노동계와 사용자계의 '사회적 대타협'이 체결됐지만, 택배기사들은 여전히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며 노동 강도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다만 노란봉투법 시행을 계기로 택배기사들 목소리에 더 힘이 싣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택배기사 처우 개선과 관련한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택배기업이 협상테이블에 직접 나설 때 부담감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대 초 온라인 유통 성장에 따라 택배물량이 급증했고, 택배기사들이 현장에서 과로로 사망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택배업계는 2021년 6월 ‘사회적 대타협’을 체결하며 이를 수습했으나 여전히 일선 택배기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맺은 사회적 대타협은 ‘최대 노동시간을 일일 12시간·주 60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택배기업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의 세부 시행령 수립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원청의 사용자성 범위’ 등이 어떻게 정의될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