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감원 역사상 첫 총파업 위기에 맞닥뜨리고 있다.
금감원 노동조합은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와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등 정부의 조직개편안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조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장외집회와 토론회 등을 추진하는 동시에 총파업 논의에 착수했다.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소비자원 분리와 공공기관 지정 등 조직개편안과 관련해 내부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
이 원장은 노조와 직접 만나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장기전을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12일 오전 연일 조직개편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노조와 첫 면담을 진행했다. 사측에서는 이 원장과 황선오 기획·전략 부원장보가 참석했고 노조 측에서는 정보섭 금감원 노조위원장 직무대행과 윤태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자리했다.
이 원장은 정부의 조직개편안이 발표된 뒤 금감원 내부 메일을 통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힌 것을 제외하고는 공식적 소통이 없었다.
이에 이날 면담에 금감원 안팎의 시선이 집중됐다. 노조가 면담 결과에 따라 총파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이날 “그동안 다양한 노력에도 (금감원)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 것에 원장 이하 경영진은 깊이 공감한다”며 “조직분리의 비효율성과 공공기관 지정에 따른 독립성 및 중립성 약화 우려를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앞으로 세부 운영방안 설계를 위한 관계기관 논의와 입법과정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노조와 직원들의 반발이 거센 만큼 ‘조직 달래기’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금감원 노조와 직원들이 정부 조직개편안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원장의 답변은 원론적 다짐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12일 오전 조직개편에 반대하는 출근 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금감원 노조도 조직개편 반대 집단행동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놓고 있다.
노조는 “국회나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서 금감원 입장이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경영진에 요구했다”며 “다음 주에는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국회 앞 집회를 진행하는 등 금융소비자원 분리 철회, 공공기관 지정 철회를 위한 투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다음 주 민주당의 정부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토론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정확한 날짜를 조율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조직개편에 따른 독립성 훼손 우려를 알리는 의견서 전달도 준비하고 있다. 금감원은 앞서 1997년 외환위기 뒤 국제통화기금 권고에 따라 독립기구로 출범했다.
노조는 국제통화기금에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신설하고 금감원,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조직개편이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는 내용을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노조는 전날 조합원, 비조합원을 포함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총파업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비대위는 전례가 없는 총파업 추진을 앞두고 법률적 검토 등에 돌입했다.
앞서 1997년 당시 정부의 금융감독기관 개혁안에 따른 조직통합을 두고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등이 반발해 파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금감원 체제에서 파업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금감원 노조와 직원들은 이날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 본원 로비에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반대하는 출근 전 집회를 열었다. 9일부터 나흘째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로비에는 조직개편에 반대하는 직원들의 명패가 깔려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주최 측이 추산하는 집회 참석 직원은 700여 명이다.
정보섭 금감원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집회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겉으론 개혁으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 금융을 정치적 도구로 삼으려는 관치금융으로 볼 수 있다”며 “금융소비자는 소외되고 금융 투명성과 공정성이 모두 무너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태완 금감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금융위원회가 3일 전 금융위 설치법, 2일 전에는 개별업법 수정안을 졸속으로 금감원에 통지했다”며 “금감원의 주장을 반영시키는 총성 없는 전쟁터에 금감원 임원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에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포함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이날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