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노동부 직원들이 8월27일 미국 워싱턴D.C. 노동부 청사 외벽 성조기 옆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대형 현수막을 걸고 있다. 대형 현수막에는 "미국인 노동자가 우선한다"라고 적혀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고용지표가 나빠진 가운데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급습으로 부각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노동시장에 부담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친환경 제조업 지원은 줄이고 관세 장벽을 높여 이미 관련 기업에 채용 부담을 안겼는데 전문 인력 유입마저 끊기면 고용 시장에 ‘한파’가 찾아올 수 있다.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은 9일(현지시각)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일자리가 기존 발표보다 91만1천 개 부족하다는 개정 보고서를 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다시 집계한 일자리 숫자는 당초 노동통계국이 발표했던 수치에 절반에도 못 미친다. 노동통계국은 내년 초에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다.
미국 씽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 또한 5일 보고서를 통해 "8월 한 달 동안 기업이 축소한 제조업 일자리 개수가 1만2천 개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올해 4월부터 최근까지 일자리 감소 숫자는 누적 4만2천 개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수개월 동안 고용이 전반적으로 크게 둔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미국진보센터는 짚었다.
‘크고 아름다운 법(OBBBA)’ 통과와 관세 정책이 기업에 부담을 키워 고용지표 악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감세 법안인 OBBBA는 전기차 소비자에게 제공하던 최대 7500달러(약 1040만 원)의 세액공제와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제조업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조기 종료시켰다. 이에 관련 기업의 고용 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진보센터 소속 사라 에스트렙 경제학자는 CBS뉴스를 통해 “매일 모든 게 바뀌다 보니 기업은 생산 방식을 어떻게 정할지 확신하지 못한다”며 채용이 줄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쇠락한 공업지대 유권자를 적극 공략했다.
일명 ‘러스트 벨트’라 부르는 이 지역은 자동차와 철강 등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많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로 나갔던 제조 기업을 미국으로 불러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는데 최근 정책이 약속과 달리 역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 5일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 남겨진 중장비 사이로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
이에 더해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도 고용지표를 추가로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은 4일(현지시각)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주 배터리 합작공장을 급습했는데 이는 기업의 채용이나 투자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씽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딘 베이커 선임 경제학자는 CNBC에 조지아 공장 급습을 두고 “외국 기업이 대미 투자를 재평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이민 당국이 전기차용 배터리라는 첨단 제조업 공장을 급습했다는 점도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키운다.
미국 내 기술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불법 체류자 단속이라는 목표만 밀어붙여 해외 기술자 유입 장벽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 장비를 설치하지 못하면 기업이 공장을 돌릴 수 없어 현지 노동력 채용도 자연히 막힐 수밖에 없다.
미국 비정부기구인 ‘재생에너지위원회(IREC)’의 크리스 니콜스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생산 설비를 짓겠다고 해도 500~1000명의 전문 인력을 갑자기 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는 공격적인 반이민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톰 호먼 미국 국경 안보 총괄 책임자, 일명 ‘국경 차르’는 7일 CNN 인터뷰에서 “더 많은 작업장을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고용에 계속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실제로 이민세관단속국은 조지아주에 이어 일리노이 시카고와 매사추세츠 보스턴 등으로 불법 체류자 단속 전선을 넓혔다.
종합하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감세와 관세 정책으로 이미 악화한 고용 지표에 반이민 정책까지 더해 일자리를 줄이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국내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반도체나 조선 등 설비 건설이나 장비 설치를 미국인이 처음부터 할 수 없다”며 “교육 인력을 보내려면 현지 법인으로 소속을 바꿔야 하는데 자격 요건이 까다롭고 비자도 제한돼 어렵다”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