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 기자 sollee@businesspost.co.kr2025-09-02 16: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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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브의 미국 현지화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가 미국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캣츠아이가 출연한 ‘갭’ 광고 갈무리. <갭>
[비즈니스포스트] 지난해 8월 데뷔해 이제 막 1주년을 지난 하이브 걸그룹 ‘캣츠아이’가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시기 데뷔한 JYP엔터테인먼트 걸그룹 ‘비차’가 ‘걸셋’으로 리브랜딩하며 재도약을 모색하는 것과 상반된다.
2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따르면 캣츠아이는 최근 음악시장에서 가장 떠오르는 아티스트로 꼽힌다.
캣츠아이는 하이브가 미국 게펜레코드와 합작해 만든 자회사 하이브UMG 소속의 미국 현지화 다국적 걸그룹이다. 스위스와 필리핀, 미국, 한국 등 다양한 국적 멤버 6명으로 이루어졌다.
영국 음악 잡지 NME는 2025년 ‘올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 가운데 하나로 캣츠아이를 거론했다.
8월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적 음악 축제 ‘롤라팔루자’ 무대에 캣츠아이가 올랐다. 이들을 보기 위해 관객 약 8만5천 명이 모였다. 미국 잡지 코스모폴리탄은 이 무대를 ‘올해 최고의 롤라팔루자 무대 톱 5’ 가운데 2위로 선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 차트인 빌보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올해 발매한 음원 ‘날리’와 ‘가브리엘라’가 빌보드 핫100 차트에 각각 5주와 4주 동안 올랐다.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는 올해 낸 앨범 ‘뷰티풀 카오스’가 최고 4위를 기록했다.
캣츠아이는 때 아닌 청바지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발단은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의 청바지 광고였다.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여자 배우 시드니 스위니를 모델로 기용한 이 광고에서는 “내 유전자는 푸른색이에요”라며 “시드니 스위니는 멋진 청바지를 가졌어요”라고 하는 문구를 내세웠다.
영어로 유전자(genes)와 청바지(jeans)가 비슷한 발음을 가진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였지만 백인의 유전자가 멋지다는 뜻으로 읽혀 ‘백인 우월주의’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후 경쟁사인 패션 브랜드 ‘갭’은 캣츠아이를 모델로 한 광고를 선보였다. 여러 인종의 캣츠아이 멤버들이 청바지를 입고 경쾌하게 춤추는 모습은 그 자체로 다양성을 보여주며 ‘아메리칸 이글’과 비교됐다.
해당 광고는 공개 2주가 지난 2일 기준으로 인스타그램 조회수 4972만 회, 유튜브 조회수 1353만 회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미국 미식축구리크 NFL의 공식 계정은 이 유튜브 영상에 “씹어먹었다, 흠잡을 데 없다”는 댓글을 남겼다. 다른 누리꾼들도 “부정할 수 없이 성공적 마케팅이다”, “건너뛰기 할 수 없는 유일한 광고다” 등의 호평을 했다.
가수 저스틴 비버의 아내이자 유명 모델인 헤일리 비버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광고를 공유하며 더욱 화제가 됐다.
캣츠아이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일화는 또 있다. 멤버인 라라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데 이어 메간도 스스로 양성애자라고 고백한 것이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누리꾼들은 해당 멤버들이 자랑스럽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처럼 캣츠아이가 미국에서 보여주는 활발한 활동은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의 ‘K팝 방법론’이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시혁 의장은 2023년 캣츠아이를 선발했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를 선보이며 “오래전부터 K팝의 방법론에 기반해서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인재들을 육성하고 이들과 함께 K팝 스타일의 글로벌 그룹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K팝 방법론’의 핵심은 K팝의 인재 양성 노하우와 프로듀싱 시스템을 해외에 도입하는 것이다. 방 의장은 캣츠아이로 이 방법론을 처음 시도해 첫술부터 꽤 배부른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하이브 관계자는 “캣츠아이의 인기와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방시혁 의장이 주창한 ‘K팝 방법론’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세계 주요 음악시장에서 거점을 확보하고 ‘K팝 방법론’을 현지에 맞게 적용해 나가는 하이브의 ‘멀티 홈, 멀티 장르’ 전략이 성과를 창출하고 있으며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글로벌 빅3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세계 음악시장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 의장의 이러한 성과는 과거 그를 스카우트하고 프로듀서로 키운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CCO(최고창작책임자)와 비교했을 때도 두드러진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인 박진영 CCO는 회사의 신인 개발과 프로듀싱을 책임지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캣츠아이보다 7개월 앞선 지난해 1월 미국 현지화 다국적 걸그룹 ‘비차’를 선보였다. 비차는 JYP엔터테인먼트가 미국 리퍼블릭레코드와 합작해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선발한 걸그룹이라는 점에서 캣츠아이와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1년 만에 멤버 6명 가운데 2명이 탈퇴하면서 비차는 올해 8월 활동을 종료했다. 남은 멤버 4명은 ‘걸셋’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리브랜딩했다. 비차로서 활동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 JYP엔터테인먼트의 미국 현지화 다국적 걸그룹 ‘비차’는 ‘걸셋’으로 팀명을 바꿨다. < JYP엔터테인먼트 >
하이브가 2021년 출범한 반면 JYP엔터테인먼트는 1996년 설립돼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프로듀싱 역량 차이는 더 부각된다.
박 CCO의 미국 진출 시도는 단지 최근의 것이 아니다. 2008년 일찍이 걸그룹 ‘원더걸스’를 미국 시장에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23년 유튜브 ‘피식쇼’에 출연해 원더걸스의 사례를 돌아보며 “나는 정말 K팝이 미국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그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내 믿음은 사실 맞았다”고 말했다.
원더걸스의 시도는 실패했을지언정 K팝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박 CCO는 걸셋으로 이 같은 꿈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