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애플이 4년 동안 6천억 달러가 넘는 투자를 집행한다는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트럼프 정부가 밀어붙인 통상정책이 한국 기업에 부담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애플과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기업이 트럼프 정책에 발맞춰 공급망을 갖추려다 보니 삼성과 현대, LG 등 한국 기업에 일감이 늘고 있는 상황에 기인한다.
애플은 6일(현지시각) 삼성전자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에서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전자기기에 들어갈 신규 칩을 제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애플이 트럼프 정부 기조에 발맞춰 미국 내 공급망 구축에 나서는 과정에서 이뤄진 일이다.
애플은 지난 2월에 이어 이번까지 트럼프 임기 4년 동안 6천억 달러(약 830조 원)를 미국에 투자하는데 삼성전자도 자사 공급망에 포함시켰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협력해 개발할 반도체 기술을 미국에 가장 먼저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GM도 현대차와 5대의 신차를 공동 개발해 이르면 2028년부터 미국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현대차와 GM의 이번 협업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인 지난해 9월 체결한 양해각서(MOU)에 기반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직접 대응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두 기업은 북미와 남미에서 자재와 운송, 물류 등을 공동 조달하는 협업도 추진한다.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 원가를 절감해 자동차 관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미국으로 수입하는 자동차에 최대 15% 관세를 부과하고 차량용 부품에도 관세를 매겼다.
로이터는 7일자 기사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는 희토류 소재를 비롯한 주요 부품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무역 전쟁으로 비싼 생산비용에 직면했다”고 짚었다.
LG에너지솔루션 또한 최근 테슬라에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6조 원어치 공급하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배터리 소재를 피하고 미국 현지에서 만든 제품을 공급받기 위해 계약을 맺었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이 외에 삼성전자도 테슬라와 165억 달러(약 23조 원) 규모의 반도체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과 현대차, LG 모두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 대형 기업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삼성전자> |
트럼프 정부가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통상 정책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자 한국 기업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관세로 대미 수출품 가격은 경쟁력 떨어지고 현지 투자에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정부의 적극적 노력으로 한미통상협상이 타결되고 트럼프 정부는 한국에 1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3500억 달러(약 485조 원)을 미국에 투자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과 테슬라, GM 등 미국 기업이 한국과 협업해 큰 일감을 맡김에 따라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이 거꾸로 한국 기업에 도움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이 미국에 선제적으로 생산 설비를 갖췄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오스틴과 테일러 등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뒀다. 테일러 공장 2곳과 연구·개발 시설, 오스틴 기존 설비 확장 등에 370억 달러(약 51조 원)를 투자한다.
현대차는 연산 30만 대 규모의 조지아주 공장을 올해 3월 개장했다. 앞으로 투자를 늘려 연산 50만 대로 확장한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또한 최근 미시간주 홀란드 공장에서 ESS용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다.
현지매체 피닉스비즈니스저널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짓는 공장 건설도 공정률이 60%에 이른다. 이곳은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를 만들 공장이다.
트럼프 정부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전략 제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설비를 늘리고자 하는데 여기에 호응할 조건을 갖춘 셈이다.
애플과 테슬라, GM 등 기업과 협업이 마중물 역할을 해 미국 사업을 더욱 확장할 가능성도 고개를 든다.
다만 블룸버그는 1일자 기사에서 “관세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감소하고 핵심 물가는 상승해 미국 수요에 의존하는 수출업체는 리스크를 안을 것”이라며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수출기업의 대미 판매가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