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5-07-29 15:20:04
확대축소
공유하기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왼쪽)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이재명 정부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 조건을 개선해 달라며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과 시위를 벌이던 노동계의 요구에는 묵묵부답이었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사업장을 방문한 뒤에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허영인 회장은 이른바 ‘노조 파괴 시도’과 관련한 재판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을 변호했던 법무법인 LKB파트너스 소속 변호사를 추가 선임했다. 어떻게든 이 대통령과 접점을 늘리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허영인 회장이 이재명 출범 이후 새 정부와 보조를 맞춰보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생산 라인에서 벌어지는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SPC그룹은 10월부터 파리바게뜨와 파리크라상, 샤니, SPC삼립 등 계열사별로 실행 방안을 마련해 일부 품목을 제외한 모든 라인에서 8시간 야근을 없애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을 움직이게 했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SPC그룹은 여태껏 ‘3조2교대’나 ‘2조2교대’ 시스템으로 24시간 공장을 돌려왔다. 쉽게 말하면 주야간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하는 형태를 주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그동안 장시간 근무한 뒤 맞교대하는 근무 형태가 피로 누적과 야간 집중도 저하, 사고 가능성 증가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개선할 것을 요구해왔다. SPC그룹 역시 이를 반영해 2조2교대 비율을 점차 줄였지만 여전히 전체 근무 형태의 절반 이상을 2조2교대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관련 사항들을 나무란 직후 노동계의 숙원이 금세 실현될 분위기로 기류가 바뀌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경기 시흥의 SPC삼립 시화공장을 찾아 주재한 현장 간담회에서 “최고경영자의 경영적 판단이지만 아마도 12시간씩 근무하고 맞교대하다 사고가 난 것 같다”며 “밤에 12시간씩 일하면 힘들다. 졸립다. 그러면 당연히 쓰러지고 (기계에) 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SPC그룹이 10월부터 야간근무 시간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생산라인의 운영 방식을 전면 손질하겠다고 나선 것은 허영인 회장이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SPC그룹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친정부’ 성향을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말도 나온다.
허영인 회장은 노조 탈퇴를 종용한 혐의로 넘겨진 재판과 관련해 6월 말 이광범 변호사 등 법무법인 LKB파트너스 변호사 4명을 변호인으로 추가 선임했다. 이미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10명으로 변호인단을 꾸린 상태였는데 상대적으로 중대형 로펌의 변호사를 더 구한 것이다.
▲ 새 정부 출범 이후 SPC그룹이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는 듯한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부가 교체된 뒤 여권과 상대적으로 접촉면이 넓은 법무법인을 선택해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LKB파트너스는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다가 재판에 넘겨진 주요 인사들의 소송을 맡은 바 있으며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로 재직할 때 당시 이 지사를 변호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SPC그룹이 ‘SPC 컴플라이언스 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위원장에 김지형 전(前) 대법관을 선임한 것도 친정부 색채를 드러내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 전 대법관은 노동법과 관련해 역량을 인정받는 법조인이다. 노동법실무연구회를 대법원 정식연구회로 발족해 직접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국내 최초의 노동법 주석서를 내놓기도 했다. 2020년에는 삼성전자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SPC그룹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 전 대법관을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기구의 수장에 선임한 것은 결국 정부와 코드를 맞추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카카오가 김소영 전 대법관을 ‘준법과 신뢰 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선임했을 때도 김소영 전 대법관의 보수적 성향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나왔다”며 “윤석열 정부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보수 인사라고 판단해 위원장으로 내세웠다는 뜻인데 SPC그룹도 이런 고려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