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아이오닉9'이 경기도 화성시 남양기술연구소에서 강설(강한 눈바람) 시험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
[화성(경기)=비즈니스포스트] “연구시설에 있어서 만큼은 현대차가 다른 어떤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라이드&핸들링(R&H) 성능개발동을 소개하는 관계자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는 국내 최대 규모 자동차 연구소다.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의 이름도 남양의 첫 알파벳에서 따왔다.
23일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기술개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남양기술연구소를 찾았다. 남양기술연구소가 그룹의 핵심 연구시설인 만큼 모든 연구동은 보안구역으로 지정돼 있었다. 연구소에 도착해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버스에 보안요원이 올라와 기자 휴대전화 카메라에 보안스티커를 붙인 후 돌려줬다.
버스가 연구소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자 왜 입구에서부터 보안이 철저한지 알 수 있었다. 주차장뿐 아니라 연구소 도로 곳곳에서 위장막을 씌운 개발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곧 출시될 EV5로 추정되는 차량뿐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실루엣을 가진 차량도 보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공력 시험동과 환경 시험동이다. 공력 시험동은 이름 그대로 공기역학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이다. 전기차가 점점 늘어나면서 공기의 저항력 계수, 즉 공기저항계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추세다.
공기저항계수를 0.01 낮추면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가 6.4㎞ 늘어난다. 배터리로 주행거리 6.4㎞를 더 늘리려면 배터리 가격이 약 25만 원 더 비싸진다. 그만큼 공기저항계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비용을 낮추고 주행거리를 늘리는 길이다.
공력 시험동의 핵심은 직경 8.4m 크기의 대형 송풍기다. 이 송풍기는 3400마력이라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거센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의 속도는 최대 시속 200㎞까지 구현된다. 한 연구원이 송풍기 날개 옆에 서자 날개 하나가 연구원 키보다 훨씬 컸다.
▲ 현대차그룹의 남양기술연구소 공력 시험동에는 직경 8.4m 크기의 대형 송풍기가 설치돼 있다. 이 송풍기는 3400마력 출력으로 최대 시속 200㎞ 바람을 일으켜 공기저항계수 시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현대자동차그룹> |
이 송풍기가 작동하면 'ㅁ'자 형태의 바람 길을 통과해 시험 설비가 있는 곳으로 전달된다. 공력 시험은 차량을 원판 저울 위에 올려놓고 진행된다. 저울을 통해 뒤로 밀리는 힘인 항력, 뜨는 힘인 양력, 옆에서 받는 횡력 등을 측정한다.
저울은 아주 정밀해서 2톤짜리 차량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500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얹어도 무게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남양기술연구소는 이날 세계 최저 공기저항계수에 도전 중인 ‘에어로 첼린지카’ 1대를 깜짝 공개했다. 양산을 위해 개발된 차가 아닌 낮은 공기저항계수만을 위해 만든 시험 차량이다.
이 차의 공기저항계수는 0.162였다. 평소 숨겨져 있는 사이드 블레이드와 디퓨저 등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활성화하면 공기저항계수가 0.144까지 줄어든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내놓은 초저항력 콘셉트카의 공기저항계수가 0.19에서 0.17인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가 개발한 차량의 공기저항계수가 얼마나 낮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시연 중 직접 바람을 맞아봤다. 안전 문제로 시속 100㎞ 바람만 일으켰는데, 서 있을 수 없었고 몸이 뒤로 밀렸다.
시험동 관계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형 송풍구를 가동하는 데에는 1200세대가 동시에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전력이 소모된다"며 "8시간 기준으로 4천만~5천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환경 시험동은 차량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놓고 테스트하는 곳이다. 현대차그룹이 환경 시험동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 시험동의 핵심은 세계의 다양한 기후와 주행 조건을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는 환경 풍동 챔버다. 환경 풍동 챔버는 온도, 습도, 풍속, 밝기 등 다양한 환경 조건을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고, 차량의 주행 부하와 속도까지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다.
고온 풍동 시설에서는 아이오닉6 N을 섭씨 50도 고온에서 테스트하고 있었다. 마네킹을 조수석에 태우고 고온에서 실내 온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챔버 문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열기가 덮쳤다. 습도를 20%로 낮춰놨는데도 섭씨 50도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고온이었다.
저온과 강설 풍동 시설은 이와는 정반대다. 저온 풍동 시설에서는 낮은 온도에서 배터리 등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를 시험한다. 강설 풍동에서는 강우나 강설 환경을 만들어 놓고 차량을 시험한다.
강설 풍동에서 영하 30도로 설정된 챔버 안에는 아이오닉9이 강한 눈보라를 맞고 있었다. 시설 문을 열자 아까와는 반대로 한기가 순식간에 몰아쳤다. 잠깐 서 있는데도 온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전기차에는 프렁크(프론트 트렁크)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강설 풍동에서는 프렁크에 눈이 들어가지 않는지 등을 시험한다. 아이오닉9이 엄청난 눈보라를 한참 맞고 있었는데도 보닛을 열어보니 프렁크 주변부에만 눈이 조금 보일 뿐, 방금 청소한 것처럼 깨끗했다.
▲ 현대차그룹의 남양기술연구소 라이드&핸들링(R&H) 성능개발동에 있는 핸들링 주행시험기는 세계 단 두 대밖에 없는 장비다. 이 시험장비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환경과 노면 조건을 그대로 구현한 상태에서 핸들링 기술을 반복적으로 시험할 수 있게 해준다. <현대자동차그룹> |
다음으로는 라이드&핸들링(R&H) 성능개발동으로 향했다.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R&H 성능은 차량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전기차는 뛰어난 가속력을 내기 때문에 고속 주행 시 안정성이 중요할 뿐 아니라, 차량 하중이 늘면서 서스펜션과 타이어에 가해지는 부담은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커졌다.
이 곳에는 세계 2대 밖에 없는 핸들링 주행 시험기가 있다. 나머지 1대는 독일 자동차 연구기관이 사용하고 있다.
거대한 기계 장치 위에는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이 고정돼 있었다. 차량 앞에는 120인치 디스플레이를 통해 가상 주행 환경이 그대로 표시됐다. 차량 안에는 운전자 대신 주행 로봇이 설치됐다. 로봇은 스티어링 휠이나 페달 조작은 물론 수동 변속기도 정밀하게 조작한다.
세계 여러 곳의 환경을 설정해 놓고 테스트가 가능했다. 시험이 시작되자 코나 일렉트릭이 제자리에서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마치 실제 도로 위를 달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가상 화면 속 오르막에서는 차량 전면부가 위로 들렸다.
김성훈 주행성능기술팀 연구원은 “실제 노면에서 주행하지 않아도 이 시험기를 통해 다양한 노면 조건과 한계 상황을 반복적으로 시험할 수 있다”며 “특히 스티어링 응답속도나 차량의 거동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큰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