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기자 heydayk@businesspost.co.kr2025-07-18 16: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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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의료계 리베이트(불법 경제적 이익 제공) 척결을 위한 특별단속에 돌입하면서 제약업계가 긴장에 휩싸였다.
복제약(제네릭) 중심의 영업 구조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혁 논의도 본격화되면서 약가 인하와 성분명 처방 도입 등이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 대웅제약이 의약품 리베이트(불법 경제적 이익 제공) 혐의로 재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제약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대웅제약>
18일 제약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의약품 리베이트가 정부가 지정한 ‘3대 부패비리’에 포함되면서 제약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공직비리, 불공정비리, 안전비리를 3대 부패비리로 지정하고 이달 1일부터 10월31일까지 4개월 동안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리베이트 의혹을 받는 대웅제약 재수사를 본격화한 것도 정부 기조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경찰은 17일 대웅제약 본사와 자회사, 관련 업체 등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대웅제약은 2022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영업직원들이 전국 380여 병원을 방문해 학술행사 지원을 명목으로 자사 제품 처방 확대를 유도하고, 이 과정에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정확한 리베이트 규모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경기 성남수정경찰서에 송치했으나 올해 4월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이 과정에서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언급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수사가 미진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성남수정서는 6월25일 이 사건을 상급 기관인 경기남부청으로 이관해 재수사를 시작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경찰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며 “약사법과 공정경쟁규약을 철저히 준수해 학술행사 후원과 제품설명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활동은 모두 관련 규정과 내부 CP기준에 의거한 사전·사후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기획되고 집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재수사인 만큼 대웅제약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급기관으로 사건이 이관된 이상 수사가 쉽게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다른 제약사들도 불똥이 튈 가능성을 우려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제약업계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실시된 2010년 이후로도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2024년 9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실시한 의료의약, 건설산업, 경제금융 등 분야의 불법 리베이트와 공직자 부패비리에 대한 특별단속에서도 의료·의약 분야 불법 리베이트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리베이트 제약사 과징금 부과 처분을 살펴보면 2023년 JW중외제약 294억 원(국내 제약사 리베이트 사건 중 가장 고액 과징금 사례) 안국약품 5억 원, 2024년 경보제약 3억 원에 이른다.
▲ 최근 3개 년도 공정거래위원회의 리베이트 제약사 과징금 부과 처분을 살펴보면 2023년 JW중외제약 294억 원(국내 제약사 리베이트 사건 중 가장 고액 과징금 사례) 안국약품 5억 원, 2024년 경보제약 3억 원에 이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 쌍벌제 이후 업계 전반에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리베이트가 크게 줄었지만, 중소제약사들에게는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라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며 “정부가 의약품 영업판매대행사(CSO) 규제를 강화하는 등 간접 리베이트를 방지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제약사들이 CSO에 높은 판매수수료를 제공하는 등 우회적 수단을 활용할 경우 이를 완전히 막기엔 완전히 차단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의약품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전문의약품 처방이 전적으로 의사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약사는 의사가 처방전에 써준 상품만 환자에게 조제해야 한다. 대체조제를 통해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을 약사가 동일 성분, 함량, 제형을 가진 다른 회사의 의약품으로 바꿔 조제할 수 있지만, 이는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이에 따라 일부 제약사들은 자사 의약품 처방을 유도하기 위해 금품, 여행, 세미나 등의 형태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해 왔다. 특히 복제약 중심의 국내 제약 구조에서는 효능 차별화가 어려운 만큼, 영업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리베이트 제재 수위가 낮은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대부분 과징금 부과나 일시적 판매중지에 그치는데, 판매중지의 경우 처분 전 미리 재고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제재 효과를 회피하는 사례도 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건보노조)은 이런 리베이트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건보노조는 지난 2일 입장문을 내고 “리베이트는 단순히 금전 거래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라며 “의료비 상승을 유발하고 과도한 처방으로 인해 환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분명 처방과 복제약 약가 인하가 리베이트의 구조적 개혁을 위한 핵심 대안으로 제시했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약의 상품명이 아니라 성분명으로 처방을 내리고, 약사는 해당 성분의 약 중에서 환자에게 적합한 약을 선택하여 조제하는 제도다.
건보노조는 “성분명 처방은 상품명 처방권을 이용한 불법 리베이트를 차단하고, 동일 성분 간 가격 경쟁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과 과다처방과 중복처방을 방지하는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해외 선진국 사례처럼 상품명처방과 성분명처방의 병행운영이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은 성분명 처방을 원칙으로 권장하고 있다. 성분명으로 처방된 경우 약사는 가장 저렴한 복제약을 조제해야 한다. 프랑스도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고 대체조제를 장려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약국에 쌓이는 ‘불용 개봉 재고약’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대한약사회는 “특정 제약회사 직원이 병·의원을 다녀가면 다른 회사 제품으로 처방이 바뀌는 탓에 불용 재고의약품은 약국과 유통업체 창고에 쌓여간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에 대응해 제한적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활성화를 공약한 바 있어, 앞으로 정책화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또한 높은 복제약 약가는 리베이트 중심 영업을 가능하게 한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복제약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된 뒤 제조되는 만큼, 개발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약가는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돼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를 영업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복제약 약가 개편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게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국가별로 경제 규모, 약가 제도, 건강보험 체계가 상이해 실질적인 약가 비교는 어려우나, 국내 복제약 약가는 해외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인 것으로 안다”며 “복제약 판매 수익이 신약 개발 투자로 선순환되고 과도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약가 보상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