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위치한 얼티엄셀즈의 배터리 공장. LG에너지솔루션과 GM이 합작해 지은 공장이다. < GM > |
[비즈니스포스트]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전기차 ‘캐즘’(대중화 이전 일시적 수요 둔화)을 극복할 수 있는 배터리 대체 공급처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새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완성차기업 GM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공장에서 제조할 배터리도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GM은 16일(현지시각) 배터리 재활용 업체 레드우드머터리얼즈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플랫폼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고 발표했다.
‘레드우드에너지’라고 이름 붙은 이 플랫폼은 전기차 폐배터리는 물론 새로 제조하는 배터리까지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사용할 예정이다.
2017년 설립한 레드우드머티리얼즈는 이미 GM 전기차에서 나온 폐배터리를 활용해 네바다주 스파크스에 ESS를 설치했다. 두 기업이 이러한 협업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GM은 “미국에서 제조할 신규 배터리와 전기차의 재활용 배터리팩을 모두 활용해 ESS 설치를 가속화하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GM이 언급한 ‘미국산 신규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을 떠올리게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GM과 미국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설립하고 오하이오주와 테네시주 공장에서 배터리를 양산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GM 관계자는 현지 매체 디트로이트프리프레스에 “이번 확장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사 얼티엄셀즈에서 제조한 배터리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미국에 합작사와 단독공장 모두 대거 투자했던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전기차 캐즘에 따라 활로가 절실한 상황인데 새 공급처를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GM이 발표한 내용과 관련해 말을 아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높은 가격대와 충전 설비 부족으로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조사업체 에드문즈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는 올해 4월 기준 전기차 구매에 평균 5만9900달러(약 8330만 원)를 썼다. 내연기관차까지 합해서 낸 평균 가격은 이보다 1만1천 달러 저렴하다.
이에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 증가폭은 지난해와 비교해 6%에 그쳤다.
20~30%씩 성장하는 유럽이나 중국과 비교해 시장 성장이 더뎌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은 배터리 업체에 악재로 작용한다.
▲ 레드우드머터리얼즈가 미국 네바다주 스파크스에 설치한 ESS. 크루소(Crusoe)가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한다. <레드우드머터리얼즈> |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중저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개발하거나 전기차용 라인을 ESS 배터리 라인으로 전환하며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데이터센터용 배터리라는 새 판로까지 추가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수요 폭증으로 미국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조사업체 우드맥킨지는 “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40%”라며 “인공지능이 수요를 늘려 이 용량은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등 빅테크가 미국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수요에 불을 붙이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설비 특성상 24시간 내내 막대한 전력 공급을 요한다. 송전선을 설치하는 대신 인근에 직접 발전 시설을 짓는 게 효율적이다. 이 경우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ESS 설치가 필수인데 LG에너지솔루션이 GM과 협업을 바탕으로 시장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4일 감세 법안 통과로 전기차 구매에 세액공제를 축소해 배터리 업체로서는 추가 판매처의 중요도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인공지능 기술 경쟁을 위해 데이터센터와 같은 설비가 필요하다고 트럼프 정부는 강조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카네기멜런대학에서 연 회담에 참석해 “물리적 인프라를 대규모로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E&E뉴스가 전했다.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가 ESS 사업으로도 성공을 거둔 전례가 있다는 점 또한 GM과 LG에너지솔루션에게 우호적인 요소다.
종합하면 LG에너지솔루션이 GM과 얼티엄셀즈를 통해 제조하는 배터리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로 공급되면 전기차 수요 둔화 대응에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사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토니 플래너건 자동차 분석가는 “자동차 제조업체와 배터리 재활용 기업 사이에 협업은 북미에서 아직 초기 단계라 사업이 잘 돌아갈지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