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아웃도어 업체들이 비약적인 성장에 비해 해외시장 도전이 전무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 Freepik > |
[비즈니스포스트] 최근 산을 즐기는 방식은 이전보다 많이 다양해졌다. 이전에는 중년 남성들이나 또래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산에 올라 왁자지껄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카페 소모임에서 만나 닉네임으로 부르며 산행을 하거나, 러닝 동호회와 어울러 산을 뛰는 트레일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들의 옷차림을 보면, 국산보다 외국 브랜드를 더 많이 입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왜 국산 브랜드보다 외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지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땀 배출이나 통기성 등 기능적인 측면이나 여러 원단을 겹쳐 입어 기온 변화에 대처하는 레이어링 시스템, 그리고 국산과 다른 독특한(?) 디자인을 손꼽는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외국 브랜드가 가격은 곱절이나 비싸고, 어떤 경우에는 자국민 핏에 맞춰 한국인 체형과는 어울리지도 않는데 왜 굳이 살까. 국내 아웃도어 회사들이 외국 브랜드 회사와 다른 원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면 기능적으로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찬찬히 더 들여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 산의 경우 산행 들머리부터 경사가 가파르다. 여름은 유럽과 미국에 비해 덥고 습하다. 겨울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질 정도로 춥다. 여름에는 땀을 빨리 배출하고, 옷감을 뽀송하게 만들어야 한다.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방한이 최우선시 된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에서 흡수 및 배출, 즉 흡습속건에서 외국 브랜드에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땀을 빠르게 흡수하고, 건조시키는 기능성 소재에서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특히 비가 올 경우 입는 방수자켓의 경우, 외국 브랜드는 기술력과 디자인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국내 브랜드는 가성비 측면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국내 아웃도어 업체들이 기술개발을 등한시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기술력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외국 유명 브랜드를 흉내 내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기술력으로 해외시장을 뚫기보다는 고어텍스, 윈드스토퍼 등 이미 검증을 받은 외국 원단을 로열티 주고 방수나 발수기능 제품을 만들어 이미 목구멍까지 차서 포화상태가 된 내수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는 국내 아웃도어 업체 중에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곳이 있다. 텐트 설치 시 필수라고 할 수 있는 텐트폴(텐트를 지지하는 뼈대)을 만드는 메이저 회사가 몇 군데 있다. 그 중에서 국내 회사가 알파인 익스페디션, 소위 말하는 초경량 텐트폴에서 세계시장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알루미늄 합금을 개발하는 DAC(동아알루미늄)이라는 회사인데, 메이저 텐트라고 할 수 있는 힐레베르그, MSR, 더노스페이스, 시에라디자인, 마운틴하드웨어 등이 전부 DAC 텐트폴을 사용하고 있다.
1971년에 설립된 세계적인 텐트 회사 힐레베르그의 창업자 보 헬레베르그까지 DAC 제품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캠퍼들과 등산가들이 헬레베르그 텐트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DAC 폴이 제공하는 강한 내구성과 신뢰성 때문이다. 극한의 기후에서도 변형 없이 오랜 시간 사용하고, 안전한 야영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찬사가 줄을 잇는다.
이 회사가 만든 자체 텐트 브랜드가 헬리녹스이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상당히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체어, 텐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유럽, 미국의 소위 방귀깨나 끼는 아웃도어업체들이 거들먹거리지 못 한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먼저 입소문이 났으며, 세계적인 기업인 슈프림, 나이키ACG, 포르쉐, 디즈니 등과 콜라보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 캐나다 아웃도어 업체 ‘아크테릭스’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상징될 만큼 평판이 높다. 중국의 나이키라고 불리는 안타스포츠가 2019년에 인수했다. 사진은 아크테릭스 베타레인 자켓. <아크테릭스 홈페이지> |
◆ 국내 유통으로만 덩치 키우기, 서서히 한계가 나타나는 것인가
국내 아웃도어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영원아웃도어, 코오롱보다 작은 중소기업이 오롯이 자신의 기술력으로 세계시장에서 우뚝 섰고,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9년에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30주년 기념행사로 헬리녹스 체어 1000개를 깔았는데, 제품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진행되기 힘든 이벤트였다.
일부 아웃도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방풍과 방수, 그리고 투습에서 고어텍스보다 낫다고 평가하는 네오쉘은 국내 중소업체 폴라텍(Polartec)에서 만든 최첨단 방수 멤브레인 원단이다. 우수한 통기성과 신축성, 그리고 방수 프로텍션을 모두 갖췄지만, 국내 아웃도어 업체들은 이 원단을 채택하지 않았다. 국내 업체들이 여전히 비싼 로열티를 주고 고어텍스를 고집하는 사이에 미국의 WESTCOMB가 이 원단을 방수자켓으로 채택했다.
명품 아웃도어 의류에 반드시 달려 있다는 지퍼의 경우, 일본의 YKK라는 회사가 독차지하고 있다. 1993년 타계한 요시다 타다오(吉田忠雄)라는 창업자가 만들었는데, 지퍼는 당시 독일과 미국 회사가 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지퍼를 단순히 지퍼로 한정 짓지 않고, ‘열고, 닫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최소 1만 번 이상 열고, 닫아도 끄덕없는 내구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 지금 세계시장 점유율이 50% 가까이 된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2000년대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노스페이스라는 브랜드를 국내 독점 판매하는 영원아웃도어의 경우, 지난해 매출은 무려 1조1090억 원을 기록했다. K2, 아이더, 다이나핏, 와이드앵글 등 6개 브랜드를 운영하는 K2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조85억 원이었다. 종로5가 작은 구멍가게에서 시작한 블랙야크의 지난해 매출은 3791억 원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원단 개발, 기술투자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유명 배우를 모델로 기용하고, 각종 예능프로에 PPL로 들거나 들여보내 노출시키는 ‘마케팅을 가장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만 자주 듣는다. 이들이 자체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실험실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요즘 국내에서 핫한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의 경우, 캐나다 벤쿠버 본사에서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실험실에서 방수, 방품, 투습 등 다양한 기능성을 꼼꼼히 테스트한다. 이후 통과한 샘플을 마지막으로 벤쿠버 근교의 코스트 산맥에서 필드 테스트를 진행한다. 거대한 지형, 다양하면서도 변덕스러운 기후, 예기치 않은 폭우 등 극한 환경에서도 원하는 기능이 떨어지지 않아야 고객을 만날 수 있다. 아크테릭스가 지금도 ‘혁신의 아웃도어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유다.
노스페이스, 마운탄하드웨어, 랩, 피엘라벤, 룬닥스 등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라면 한 번쯤을 들어본 이들 회사는 자국보다 외국에서의 매출이 더 크다. 국내 아웃도어 업체들처럼 내수 시장만 들여다보고 만들지 않는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물건을 만든다. 글로벌 시대, 이제 독창적인 디자인과 기능적으로 뛰어난 제품으로 세계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좀 심한 말이지만 국내 아웃도어 회사는 더 이상 아웃도어 업체라고 할 수 없다. 등산복이나 트레일복이 아닌 캐주얼복, 평상복 시장으로 가고 있다. 국내 아웃도어 의류가 성장기를 지나 침체기로 들어서니 궁여지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수에만 너무 과물입한 결과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아니면 우물 한 개구리 신세로 만족한다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땀이 빨리 마르는 티셔츠는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라면 안 살 수 없다. 장원수 유통&4차산업부장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