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로템이 제작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2세대 KTX-이음'. <현대로템>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로템이 고속철도 차량 ‘KTX-이음(이음, EMU-260)’의 향상된 모델(페이스 리프트) ‘2세대 KTX-이음’을 내놨다.
국산 기술로 개발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1세대 이음은 최대 시속 260km의 ‘준고속열차’로 분류된다. 2024년 국산 고속철로는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수출 계약을 맺었다.
현대로템은 2세대 이음이 1세대 이음보다 승차감과 승객 편의사양을 대폭 개선한 고속철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4일 서울역을 출발해 호남선 전남 광주 송정역까지 약 270km 구간을 직접 타봤다.
▲ 김정훈 현대로템 레일솔루션사업본부장 전무가 지난 24일 열린 2세대 KTX-이음 시승행사에서 열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 깔끔한 디자인에 실내 정숙성 크게 개선돼, 동해선·서해선·경강선 등에 투입 예정
서울역 플랫폼에 2세대 이음이 진입했다. 매끄러운 차체에 메탈 블루와 블랙 도색의 외관 디자인이 다른 플랫폼에서 대기 중인 1세대 이음에 비해 깔끔하다는 인상을 줬다.
2세대 이음은 모터카(객실차량) 4개, 트레일러(운전차량) 2개 등 6량이 1편성으로 이뤄진다. 편성 길이는 약 150.5m로, 8량 200m 길이의 1세대 이음보다는 짧다.
열차에 올라 특실 좌석에 앉았다. 1060mm의 좌석 간 거리(일반실은 960mm)는 기존 1세대 이음 특실보다는 60mm가 짧았지만, 운행시간 동안 좁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운행을 시작한 2세대 이음이 미끄러지듯 철길을 달렸다. 서울 시내를 벗어날 때 쯤, 김정훈 현대로템 레일솔루션사업본부장 전무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 전무는 “오늘 2세대 KTX 이음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현대로템, 그동안 함께해 온 주요 부품 협력업체 300여 곳, 국민 신뢰 덕분”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새로운 모델은 2021년 개발한 이음의 후속 모델로 편의성과 승차감을 향상시키고, 소음 차단과 진동 발생을 개선해 더욱 쾌적한 여행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 2세대 KTX-이음의 객실 내부 모습. <현대로템> |
공명상 고속&SE 상무가 마이크를 넘겨받아 2세대 이음에 적용된 설계 사항을 하나씩 짚었다.
2세대 이음의 가장 큰 특징은 노면으로부터 차체 충격을 경감시켜 승차감을 높였다는 것이라고 공 상무는 설명했다.
성능을 개선한 완충장치(서스펜션)을 설치하고. 차체 하부 강도를 높이기 위해 보강재를 추가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승차감 지수(N)’는 2.0 이하로 2.5 이하였던 1세대 이음보다 개선됐다. 최고 속도 운행 시 실내소음 기준도 기존 1세대 70데시벨(db)에서 68데시벨로 낮아졌다.
공 상무는 “현재 열차가 상당히 조용하다”며 “기존보다 소음을 20% 가량 낮췄고, 승차감은 20% 향상시켰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기존 이음에는 기능 안전 등급 ‘SIL(Safety Integrate Level)을 적용하지 않았지만, 2세대 이음에는 신호장치, 제동장치, 출입문, 비상방송 등에 SIL4 또는 SIL2 등급을 적용시켜 안전성을 크게 강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차량 하부와 객실 바닥에 적용하는 차음재를 기존 강결합에서 탄성결합으로 바꾸는 ‘도전적 시도’로 정숙성을 크게 높였다고 부연했다.
약 1시간 가량 회사 측 설명과 질의응답이 끝날 즈음, 열차는 충남 논산시 부근을 달리고 있었다.
황산벌을 가로지르는 동안 장마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2세대 KTX-이음 열차의 창문. 승객이 좌석 창문 가림막(블라인드)을 개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현대로템> |
이음 모델들에만 적용된 ‘개별 창문 블라인더’를 내려봤다. 항공기 창문 느낌의 블라인더는 프라이버시를 확실히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목적지인 광주 송정역에 도착했다. 총 270km 거리를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남짓이었다.
2세대 이음은 향후 코레일 측 시운전 등을 거쳐 동해선, 서해선, 경강선(여주~원주, 월곳~판교) 등 전국 고속철도망 4곳에 투입될 예정이다.
◆ K고속철 첫 수주 20년 만에 부품 국산화율 90%, 우즈벡 이어 중동·유럽 수출 타진
2004년 4월1일 오전 5시5분. 한국 최초의 고속열차 KTX(Korea Train eXpress)가 부산역을 출발하며 전국 반나절 생활권 시대가 열렸다.
프랑스 철도기업 ‘알스톰’으로부터 이전받은 기술로 시작한 KTX는 지속된 국산화 노력에 따라 최근 부품 국산화율이 90%에 육박했다.
현대로템은 2005년 ‘KTX-산천(KTX의 두 번째 모델)’ 사업자 입찰에서 국산 고속철도시험차량 ‘G7’을 앞세워 ‘최초 KTX’ 제조사인 프랑스 알스톰을 제치고 산천 사업을 따냈다.
KTX-산천 개발을 시작해 양산품 생산까지 총 15년이 걸리는 동안 현대로템은 세계 고속철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쌓았다.
KTX-산천과 같은 ‘동력집중식 고속열차’의 시대가 저물고, 수송능력과 가·감속능력이 향상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가 대세가 되자 회사는 2007년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개발에 착수했다. 2016년 양산을 거쳐 2021년 국내 첫 동력분산식 고속철 KTX-이음을 상용화했고, 이어 2024년 KTX-청룡(EMU-320), 2025년 2세대 KTX-이음까지 선보였다.
▲ 지난 24일 시승 행사를 마친 2세대 KTX-이음 열차가 전라남도 광주 송정역에 멈춰서 있다. <현대로템> |
김정훈 현대로템 레일솔루션사업본부장 전무는 우즈베키스탄 고속철 수주전 당시를 회고하며 “우즈벡은 스페인 기업 탈고가 2011년부터 고속열차를 공급하고 있었다”며 “관광객 증가에 따른 수송능력 확충 요구를 파악해 KTX-이음을 기반으로 한 고속철을 제시했고, 수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또 “탈고는 우즈벡 측에 운영·유지보수 관련 기술 이전을 꺼려지만, 현대로템은 코레일과 함께 유지보수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며 “한국도 2004년부터 고속철도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가 상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우즈벡 고속철 수출의 여세를 몰아, 아랍에미리트(UAE)에 고속철 수출 계약을 노리고 있다. 오는 8월 본입찰이 진행될 예정으로, 차량과 시스템 사업비만 36억 달러(약 4조9천억 원)에 이른다. 이밖에 동유럽 고속철도 시장 진출도 타진하고 있다.
2세대 이음은 한국형 열차제어시스템(KTCS-2) 적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KTCS-2는 차세대 ‘국산 철도 신호시스템’으로, 현재 전국 모든 철도에 깔려있는 외국 신호시스템 ‘ATC’를 대체할 예정이다.
신호시스템은 철도의 유지보수 핵심으로, 기존 ATC 수입대체 효과는 총 1조2149억원으로 추정된다. 향후 고속철도 수출 시 신호시스템까지 포함하면 수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유럽연합(EU)은 정부조달협약(정부 조달사업에 해외기업의 참여를 보장하는 협약) 예외 품목으로 고속열차를 지정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각종 규제로 사실상 해외 기업의 고속철도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그나마 존재하던 기존 고속철 입찰시 과거 납품 실적 요건도 삭제했다. 해외 고속철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 고속철 사업에 얼마든지 입찰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김 전무는 시승 막바지에 “이는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국산 기술을 보호를 위해 제도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국산화율이 90%로 해외에 납품하면 현대로템뿐 아니라 국내 철도사업 전반에 좋은 파급효과가 미친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