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2025년 2월7일 서울 을지로 T타워에서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신임 팀장 교육 마지막 일정으로 CEO와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 SK텔레콤 > |
[비즈니스포스트] 국가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파란 민방위 조끼를 걸친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이들을 두고 일부에서는 ‘보여주기식’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행위 자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명백한 의지 표현이자, 사회의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드러내는 상징적 행동이다.
최근 SK텔레콤이 겪고 있는 대규모 해킹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선다. 이동통신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국가 인프라의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초유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해킹 사태 발생 이후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의 행보는 엄중한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가 해킹 사고가 발생한 지 한참 지난 후에야 국민들에 모습을 드러낸 점이다.
SK텔레콤 해킹 사고는 단순한 기업 리스크가 아니라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 중대한 사건이다.
하지만 유 사장은 사고 발생 후 무려 7일이 지나서야 대국민 사과에 나섰고, 그마저도 7분 남짓 짧은 시간이었다.
국민 불안이 고조되던 그 시점에 SK텔레콤의 수장으로서 보여줘야 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후 SK텔레콤은 매일 일일 브리핑을 통해 사고 수습 과정을 알렸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유 사장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지난 22일 한 기자가 유 사장이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사안에 따라 참석할 예정”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돌아왔다.
지난 19일 25종의 악성코드가 새롭게 확인돼 일일 브리핑 현장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지만, 그 자리에 유 사장은 없었다.
▲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2025년 4월25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SK T타워 슈펙스홀에서 열린 ‘고객 정보 보호조치 강화 설명회’에서 최근 해킹 사고와 관련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2013년 고객 1억1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돼 당시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온 유통사 타킷(Target)의 그레그 스타인하펠 최고경영자(CEO)의 사고 대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타인하펠 CEO는 사고 발생 직후 즉각 대중 앞에 나서 사고 발생 사실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피해 범위와 고객이 취해야 할 조치, 보상 방안을 안내했다.
동시에 내부 보안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 재점검에 착수했고, 최고정보책임자(CIO)를 전격 교체했다. 또 최고정보보안책임자(CISO) 직책을 신설하는 등 보안 조직을 전면 재정비했다.
그는 사고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했고, 사태가 수습된 뒤에는 자진 사임을 통해 도의적 책임까지 감수했다.
그의 대응은 위기 상황에서 CEO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과서적 사례로 회자된다. 빠른 공개 사과와 실질적 보상, 투명한 소통이라는 3가지 핵심 요소를 모두 실천해 타깃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반면 유 사장 사고 대처 모습은 국가 대표 통신사 수장으로서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유 사장은 평소 ‘소통’에 적극적인 CEO로 알려져 있다.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당시 인수팀장을 맡아 팀원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업무 몰입도를 크게 끌어올린 경험도 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침묵과 거리두기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고객과의 신뢰 회복이 시급한 이 시점에 소통하는 CEO로서의 유 사장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보안 실패를 넘어 리더십 실패다. 기업의 위기 앞에서 CEO의 태도는 그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
책임 있는 리더는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유 사장이 그동안 강조해왔던 소통하는 리더의 모습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이라도 유 사장은 국민 앞에 서고, 고객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직접 이끌어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조직을 대표해 위기에 당당히 맞서는 리더의 모습이야말로 SK텔레콤이 빠르게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