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1일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겸 KDB산업은행장이 KDB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 KDB산업은행> |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해 구긴 ‘정책금융 맏형’의 체면을 올해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1조 적자가 예상되는 가운데 올해 6,000억 흑자전환을 목표로 내놓았다. 정책금융 맏형의 자격을 인정받고 향후 통합산업은행 출범 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홍 회장은 11일 KDB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경영실적과 관련해 “1조 원에 달할 수 있는 대규모 적자가 예견된다”고 말했다. 홍 회장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표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3년만의 적자 기록이다. 홍 회장은 적자 원인에 대해 “STX그룹 등 대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대손충당금 규모가 예상보다 컸고, 대우건설 보유지분의 경우 주가하락에 따른 주식손상차손 인식이 상당히 컸다”고 설명했다.
홍 회장은 이어 “올해 당기순이익은 6,000억원이 목표”라며 “주요 대기업의 사전 구조조정을 통해 대손충당금 규모를 줄이고, 영업자산이 증가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홍 회장이 밝힌 ‘주요 대기업의 사전 구조조정’은 재무구조가 취약해 주채무계열 대상에 포함된 기업에 대해 상시적으로 유동성을 점검하고 자구계획 추진을 유도해 자산건전성을 제고하겠다는 뜻이다. 12일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주채무계열 대상 기업의 선정기준은 금융권 총신용공여의 0.1%이상에서 0.075%이상으로 하향조정 됐다.
그 결과 현대그룹이 주채무계열에 편입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현대, 한진, 동부그룹 등 대기업 구조조정에서 산은이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 회장은 “동부, 현대, 한진그룹의 경우 산은의 예상보다 많은 규모로 자구계획안을 내놨다”면서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와 동부그룹의 자구계획 추진이 지연되는 것과 관련해 홍 회장은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계획대로 추진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홍 회장은 “현대그룹의 경우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현대증권을 매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부그룹의 자산매각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자산 하나하나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라며 “SPC로 매각될 부분은 산은 사모투자회사(PE)에서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홍 회장은 인사조직 개편을 통해 기업구조조정업무 수행의 틀을 마련해 놓았다. 지난 해 12월 산은은 해운, 선박, 항공 업종을 전담하는 기업금융 5부를 신설해 현대그룹과 한진그룹 등을 전담하게 했고, 지난 1월에는 기업구조조정 전문가인 류희경 수석부행장을 선임했다. 류 수석부행장은 1983년 산은에 입행해 기업금융부문장, 투자금융부문장, 기업구조조정실, 기업금융1실 등을 거치면서 기업구조조정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홍 회장은 기업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 6,000억원 순이익 목표를 세워놓은 것은 그가 줄곧 강조해 온 ‘정책금융의 맏형’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산은이 정책금융 맏형으로서 제 역할을 해내야 향후 통합산업은행 출범 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셈법도 깔려있다.
홍 회장은 취임 당시부터 ‘정책금융 맏형론’을 설파해왔다.
지난 해 4월 홍 회장은 취임식에서 “정책금융이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든 산은금융그룹의 정책금융기관 맏형 역할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7월에는 취임 100일 기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책금융 맏형으로 역할을 다하고 창조경제를 뒷받침할 창조금융을 선도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올해 신년사에서 “2014년 KDB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정책금융 모델을 정립해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 회장의 이런 행보는 정부가 추진하는 ‘통합산은’ 출범에 대비해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정책금융체계 개편을 위해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통합산은의 출범 시기를 오는 7월로 정해 놓았다. 그러나 이 달 임시국회에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하는 내용의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의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통합산은의 출범 일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부산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정책금융공사의 부산 이전을 주장하며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위와 이들 국회의원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개정안 처리는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