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재집권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전략에 비우호적인 변수가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재집권하면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줄어들거나, 보조금 지급 자체가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공장도 차기 미국 정부가 중국 산업을 압박하는 수준에 따라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2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트럼프 후보가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갖춘 외국기업에 대규모 인센티브를 주는 '반도체 지원법'을 정면 비판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전략도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후보는 지난 16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대만이 미국에 새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미국은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며 “그들은 미국에 지은 공장을 이후 다시 자기 나라로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대만 TSMC에 지급하는 반도체 보조금을 문제 삼은 것이다.
애리조나주에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는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66억 달러(약 9조 원)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같은 기조라면 미국에서 64억 달러(약 8조8천억 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한 삼성전자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한 SK하이닉스에도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미국 대선 결과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9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보조금을 안 준다면 투자 전략을 재검토할 수 있다”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불확실성이 증대돼 우리의 행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4월 38억7천만 달러(약 5조2천억 원)를 투자해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상황에 따라 계획을 백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당초 올해 7월을 목표로 삼았던 미국 테일러 공장의 가동 시기를 2026년까지로 늦췄는데, 이와 같은 정치적 변수를 염두에 둔 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주 정부가 아닌 미국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급이 축소 또는 폐지될 수 있다”며 “이는 고비용, 인력 확보 문제에도 미국에 반도체 제조 설비를 건설하는 이유가 훼손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하면 지금보다 중국에 반도체 압박 수위를 더 높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중국 내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업 위협요인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전체 낸드의 약 30%를 생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서 D램의 40%, 중국 다롄에서 낸드플래시의 20% 정도를 만들고 있다.
향후 미국과 중국의 갈등 증폭으로 중국에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가 더욱 까다로워지거나, 관세 폭탄을 맞게 된다면 한국 반도체 두 기업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벌써부터 중국산 제품에 60%~100% 관세를 매기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과거 2019년 트럼프 정부가 중국산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때, 국내 기업들은 중국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중국 고객에게만 판매하는 전략으로 대응했지만, 손해를 완전히 비켜가진 못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 대선 향방에 따른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안’이란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중국 대상 고율 관세 부과로, 우리 반도체 판로에 단기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첨단 반도체의 대미 밀착도를 제고하고, 중국 외 판로 다변화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나병현 기자